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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라고, 나는 성숙하다.

어린왕자의 별

by 고현

"엄마, 눈에 파리!"

"파리? 무슨 말이야?

파리가 앉았다는 거야?"
"아니! 속눈썹이 파리 다리 같다고!"

대학 4학년, 25살 된 큰아들의 팔짱을 끼고 가을길을 걸었습니다.
백화점에 아들의 옷을 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조금 멋을 내고 마스카라를 여러 번 덧칠했는데,
아들의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내내 웃음이 나더라구요.
적절한 비유 덕분에 내 속눈썹 상태가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지요.
이후 나는 마스카라를 덧칠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자란 나에게 와서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25년.
힘들었던 육아의 기억은 이제 뿌듯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단단한 팔과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 또한 성장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시부모님에게도 ‘첫 번째 육아’였습니다.
작은 손짓 하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마음을 졸이며 아이를 지켜봤습니다.

우리 아이는 젖병을 쉽게 물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온 가족이 돌아가며 안고 재운 뒤, 잠결에 분유를 먹였습니다.
먹지 않으니 변비가 심했고, 구토를 일삼았습니다.
자주 아파 응급실을 드나들었고, 부모로서 매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일과 공부, 육아를 동시에 해내려던 욕심이 아이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
엄마의 손길을 충분히 받지 못해 아이가 아픈 건 아닐까?
그때의 나는 육아에 있어서 ‘균형’을 찾는 법을 몰랐습니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시간 배분을 배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부 갈등도 있었습니다.
학습지를 시키는 것조차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시어머니께 설명드릴 방법을 고민하고, 조심스레 말씀을 드려야 했습니다.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삐걱거리며 고민하고, 배우고, 다시 시도하며 나는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육아 채널 속 주인공들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자주 아팠지만, 웃음도 많았습니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아이를 보며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함께 키우는 기쁨을 공유했습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부모가 된 사람은 다 경험합니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만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내가 아닌 아이의 행복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가고.
희생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꼬물꼬물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줄 때, 내 삶에도 따뜻함이 스며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노란 침대보 위에 가만히 앉아 잔잔한 아지랑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있을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삶과 감정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통해 나는 ‘공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배웠습니다.



태곳적부터 인간이 해 왔던 육아.
나는 그 태고의 경험을 답습했다.
현대인이기 이전에, 문명인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작은 갈등에도 속상해하던 아이가 어느새 나에게 조언을 해 줍니다.

"엄마, 예의가 경쟁력이야!"
요즘 보기 드문 예의 바름에 대한 내 걱정에, 아들은 걱정 말라며 이렇게 답해 줬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스스로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를 지켜보며,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가꾸었듯이,
우리 아들도 자신만의 행성을 만들어가겠지요!.
"그곳에서 그는 어떤 가치를 찾아갈까?
그 아이와 함께, 나는 어떤 내일을 살아갈까?"
나는 여전히, 그 미래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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