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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벚나무

by 김석철 Feb 24.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통영과 거제를 잇는 좁은 해협 견내량에는 밤낮으로 물살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와  승전고를 울리는 조선 수병들의 함성 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역사를 삼킨 격랑은 쉼없이 넘실대며 살아남은 자들을 노래하라 한다.  때로는 슬픈 역사를 감싸 안은 장송곡으로, 때로는 팍팍한 어부의 삶이 녹아든 한숨으로도 들린다.

 동피랑 언덕배기에는, 물질 나간 애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낙의 쓸쓸함이 굽이도는 골목골목에 숨겨져 있다.  망부석으로 사그라든 사연이 어디 한 둘이랴.

 먼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통영은 늘 두 얼굴로 안겨오지만 끝내는 쓸쓸함만이 긴 꼬리를 남긴다.

 욕지도를 넘어 온 빼떼기죽, 깍두기 하나면 족했을 거친 바다사내들의 충무 김밥에도 척박한 운명을 껴안고 버텨온 우리네 삶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견내량 여울목을 폴짝 뛰어넘으면 역동의 도시 거제다. 유배의 땅 거제는 통영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의 도시다. 구구절절 애달픈 사연과 상흔을 간직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운이 다르다. 통영의 뒤안길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애수는 솟구치는 여울을 넘어서기 무섭게 희망가로 돌변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은, 과거에서 미래로 훌쩍 건너뛴다.

 견내량 해협을 가로지른 두 개의 다리. 좁고 넓고, 높고 낮고. 옛 다리와 새 교량...두 도시는 이렇게 연결되었다.

 

 오량의 옛 다리를 건너 쉼 조차 멈춘 호즈넉한 동네길을 스쳐간다. 시원하게 내달리는 큰 다리를 두고 굳이 돌고 돌아 굼벵이 걸음으로 세월만 삼켜대는 좁은 이 길을 자처하는지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럼에도 지남철에 이끌리는 쇳조가리가 되는 까닭을 아직 찾지를 못했다.  

 늘어 선 아름드리 벚나무 탓인지, 밟고 밟힌 사연들이 스며든 길이라서 그런 건지. 천천히 가야만 하는 길이다.

 

 손수건을 던지면 덮일 것만 같은 작고 아담한 학교, 오량 초등학교 앞에는 쉼 없이 달려온 인생길 잠시나마 숨이나 고르고 가라고 30 숫자를 짊어진 신호등이 큰 눈을 끔뻑이며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 무엇이 보이는지 얘기를 해달라고 신호등은 카운트를 새면서 재촉을 시작한다.

 10,9,8,7... 동그랗게 뜬 새파란 눈망울이 달싹이는 내 입술만 쳐다본다.


 2월의 매서운 바람이 울어대는 벚나무 아래의 아스팔트에서 나는 대답했다.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나무의 터질 듯한 꽃망울이 보인다고.

 긴 겨울의 시작점에서 미리 봄을 기다리는 소녀의 봉긋한 가슴을...

 동피랑 고갯길에 기대어선 아낙의 애절한 기다림을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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