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 (사곡 모래실에서)
중학생 키 높이 정도의 선이 그으진 울타리인지 담장인지 모호한 경계를 사이로 판이하게 다른 두 세계가 되어버린 1, 2단지 아파트.
동떨어진 두 세계를 가로막은 장벽은 비단 야트막한 담벼락뿐만은 아니다. 담장 너머의 한 세계는 버려진 듯 차별과 냉대의 따가움이 일상의 시선이 되어버린 곳이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건수를 못하는 주제에, 생업의 시간까지 쪼개어가며 지역 교회의 한 귀퉁이를 빌려 '야학교'를 열었다.
관내 대학교 동아리방을 쫓아다니며 자비량 교사를 모집하고, 동사무소에서 야학 대상인 생활 보호 가정의 청소년 명단을 확보, 가가호호 발품을 팔아 야학 출석을 종용하기를 보름 가까이했다.
몇 차례의 교사 지원에 대한 문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교사 없는 반쪽 짜리 야학교가 중, 고등학생 열댓 명이 쏟아내는 북새통 속에서 문을 열었다.
부산의 주요 일간 신문에 격일로 칼럼을 게재하는 박 교수의 말문은 아니나 다를까, '왜?'라고 하는 질문으로 예리한 포문을 열었다. 자가당착의 늪으로 몰아넣으려는 뻔한 전략에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흡사 노루 몰이꾼처럼 변죽만 울려대는 것 같지만 상대는 노련한 박 교수다.
"야학을 시작했다면서요?"
달포를 조금 넘긴 시점이었다. 공연히 시작했나 싶은 내적 갈등이 고개를 쳐들 즈음이었으니까, 미세한 찌 올림의 순간을 기다렸던 게 분명했다.
이어지는 짧지만 뻔한 질문들은 그저 주둥이에 꿰인 바늘을 털어내기 위해 파닥거리는 녀석의 부레에 공기를 밀어 넣기 위한 조사의 손놀림에 다름없었다.
한 녀석이 학당에 나타나지 않으면 열댓의 무리가 덩달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어차피 애초에 계획했던 학습의 프로그램은 흐지부지 된 지 오래다.
애들에게는 '공부방'이 아닌 비바람과 따가운 시선을 피할 제 또래의 '놀이방'이 필요했고, 보호자들에게는 그나마 최소한 어디서 쌈박질이나 하지 않을 탁아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병들고 노쇠한 보호자들은 기약 없는 미래가 아닌, 당장 입에 풀 칠 할 현재가 백만 배는 더 소중했다. 하루빨리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서 돈을 벌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과거는 슬프고 미래는 암담한, 희망이 사치인 사람들과 일찌감시 숙명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의 때 이른 철 듬. 2단지의 사람들은 스스로 장벽을 높여 쌓고는 그 속에 숨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약자의 선택은 그저 납짝 엎드리는 것이다. 희망과 생각을 버리는 편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해지는 길임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멋모르고 장벽 속으로 발을 들였다 신념과 의지가 송두리 째 부정 당하는 무기력에 무너져가는 김 선생은 졸지에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쌤요, 내는 취직 해서 돈 벌깁니더. 졸업하면 내가 울 할매 맥여 살리야지요."
야학 학동의 대빵은 겨우 18세였다. 강보에 싸였을 때 애미에게 버림 당하고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살았던 방년 18세의 꿈이라고는 하루라도 빨리 공장에 취직하는 게 다인 2단지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김 선생의 기대와 그들의 바람은 크게 달랐다. 좁힐 수 없는 간격은 너무도 컸다. 누구는 내일을, 다른 누구는 지금 당장을... 누구는 꿈을, 또 다른 누구는 꿈이 오히려 허무임을 말한다. 같은 손가락으로 두 개의 상반된 세계를 가리킨다. 그들이 디디고 선 세상은 처음부터 달랐던 것이다.
박 교수의 반복되는 "왜?"라고 하는 질문이 향하는 표적은 정확히 이 지점이었다.
두 세계.
그들이 선택하거나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어쩌면 철저하게 삼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상대적 강자인 당신의 희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 교수, 당신은 옳았다.
적어도 당신은 본인은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결국 3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변방인으로는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질문 속에서 은연 지적했다.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두 개의 세계는 동화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방향이 같으니 도달하는 길도 같을 거라 믿었다. 정부에서 적선하듯 던져주는 몇 푼의 보조금으로 오늘을 버티는,18세의 영세 생활보호 대상자인 제자는 제 방향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어설픈 야학 선생은 반년을 자신의 벽 속에 갇혀 방향도 목적지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의 한 끼 식사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박교수 당신은 옳았고, 나는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