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 익숙한 무기력과 아주 작은 다짐 사이에서

by 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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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첫 글을 올리고, 사실 밤새 잠을 좀 설쳤다.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누가 내 글을 읽고 비웃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쩌면 이 브런치 자체가 또 하나의 도피처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침이 밝았고, 어제보다는 조금 더 무덤덤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무뎌진 걸지도.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묵직함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창밖은 예상대로 잔뜩 흐려 있었고, 간간이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이런 날씨는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괜스레 더 처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불 속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래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침은 어제 남은 식빵 한 조각에, 어제와 같은 잼을 발라 먹었다. 요즘은 뭘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다. 맛을 느끼는 감각마저 무뎌진 걸까. 예전에는 소소하게 맛있는 걸 찾아 먹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입에 넣는 느낌이다.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하얀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해야 할 일은 태산인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날. 오늘이 꼭 그런 날이었다.


오전 내내 붙들고 있었던 건 역시나 자소서였다. 어제 쓰다 만 ‘나의 성장 과정’이라는 항목. 도대체 뭘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결국 예전에 합격했다는 선배의 자소서를 슬쩍 펼쳐봤다. 화려한 스펙과 경험들. 그걸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내세울 만한 이야기가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다 못해 부족할까.’ 그런 자괴감에 휩싸여 또 한참을 허비했다. 결국 오늘 오전에도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얼마 전에 신청해뒀던 온라인 직무 설명회 영상을 틀었다. 화면 속 현직자는 열정적으로 회사와 직무에 대해 설명했지만, 나는 그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을까, 저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통과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치면서,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영상이 끝나고 나니, 안 그래도 없던 기운이 더 쭉 빠져버렸다.


며칠 전부터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두통이 오늘은 유독 심했다. 아마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 그렇겠지. 결국 서랍 속에 넣어뒀던 진통제를 찾아 입에 털어 넣었다. 씁쓸한 약 맛이 입안에 퍼졌다. ‘내 마음의 이 무거운 돌덩이도 알약 하나로 간단히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잠깐 상담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꾸준함’이라는 게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써도, 어느새 부정적인 생각들이 안개처럼 나를 뒤덮곤 하니까.


저녁 무렵에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별일 없지?” 언제나처럼 다정한 목소리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응, 그럼! 걱정 마.” 하고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엄마는 눈치채셨을까. 내가 힘든 걸 아시면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싶어서, 씩씩한 척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왜 나는 이렇게 약해빠졌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그래도 오늘 하루를 가만히 돌아본다. 비록 자소서는 몇 줄 채우지 못했고, 온라인 설명회도 집중해서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으려 노력했고, 두통약도 챙겨 먹었고, 엄마의 전화도 받았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하루였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어제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자책하기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작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위가, 어쩌면 나에게는 작은 구명튜브 같은 역할을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위로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엉망진창인 하루일지라도, 이렇게 글로 남겨두면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았구나’ 하는 아주 미미한 안도감을 주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에요’ 라고, 보이지 않는 작은 목소리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은…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솔직히 말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아침은 밝아올 테고 나는 하루를 시작해야겠지. 부디 오늘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뜰 수 있기를. 아니, 어쩌면 그냥… 이 무거운 시간을 또 하루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걸로 된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오늘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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