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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by 정은하 Feb 05. 2025


나는 모태신앙이다.


나의 의지는 하나도 없는,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내 부모님은 나의 이름도 누가 들어도 너 교회 다니는구나?라는 말을 뱉게 만들 수 있는 이름으로 지으셨다.


한때는 나도 종교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기독교로 따지자면 하나님, 나는 그 존재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믿고, 기도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매번 교회 예배에 참여하여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그런 모범적인 교인이었다. 성경에 나온 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니 아픔도 행복도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들이라고 믿었다.


나의 모든 말들이 왜 과거형이 나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지금 교회를 가족들의 권유로 인해 다니고는 있지만, 아무런 종교가 없는 무교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 천주교, 불교 모든 종교를 믿는 그런 이단일 수도 있다. 오히려 절에 가서 조용함을 느끼며 마음에 안식을 얻는 편이니 불교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왜 종교에 빠졌다가 지금은 냉담한 상태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내 안의 우울이라는 증상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종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우울증을 겪을 때에는 하나님에게 나의 이 아픔이, 이 슬픔과 버거운 짐들을 이제 제발 그만 거둬달라고 소리치고 기도하고 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악몽 같은 시간은 끝나지 않았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종교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시련을 내려주어 나를 시험하는 거라고, 더 큰 행복을 주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고통은 가시지 않았고,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으며, 나를 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교를 내려놓고 나는 온전히 나만 믿을 수 있는 내 안의 종교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뭐, 나라는 종교, 이런 뻔한 것 말고 다른 사람들이 다 믿는 기독교, 불교 이런 거 말고.

난 달을 믿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달이냐는 해답은 간단했다.

매일 밤마다 잠들지 못해 울며 소리치며, 울부짖으며 매일 보던 게 달이였으니까.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곤 하지 않는가. 우울의 뒷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울의 뒷면은 행복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달을 바라보며 평생 죽는 날까지 보지 못할 달의 뒷면을 생각하며 우울의 뒷면을 생각했다.


매일 밤마다 달에게 말을 걸어 언젠가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리고 나는 우울의 뒷면을 경험해 볼 날이 올까? 왜 나는 이렇게 우울할까? 언제쯤 이 아픔이 끝날까? 그렇게 달에게 수많은 말을 걸며 그렇게 매일 밤 달이 사라질 때까지 달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날은 달을 보며 제발 나의 인생을 거둬달라고 빈 적도 있고, 어떤 날은 왜 나만 이렇게 아픈지에 대해 달과 함께 토론한 적도 있고, 어떤 날은 같이 노래를 들으며 함께 흥얼거린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날도 있었다.


그래서 나의 종교는 달이다.


달을 보며 울부짖던 나의 모습, 가슴을 쿵쿵 치며 제발 이 아픔을 멈춰 달라고, 이 아픔을 끝내달라고 울부짖으며 속을 괴어내는 나의 모습.


그 모습들은 나의 달은 다 알고 다 보고 있었다.

 

나의 달.


내가 달의 뒷면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살아있을 순 없겠지만, 나의 우울의 뒷면을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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