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몸이 안 좋아 한의원에 갔다.
이제는 일상이 된 '현재 먹고 있는 약' 칸에 우울증 약이라고 휘갈겨 쓰고 제출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받으면서 선생님이 나의 휘갈겨 쓴 글씨를 보고 묻는다.
'우울증이 처음으로 발현된 건 언제예요?'
'음.. 한 3~4년 전? 아마 21년도일 거예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있었죠. 나의 내면의 우울을 밖으로 끄집어 내 나를 우울이라는 감옥 속에 가둬놓게 한 사건이.
그때 얘기를 하자면 누군가는 철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누가 그런 걸로 우울증에 걸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나는 그랬다.
나의 죽일 놈의 첫사랑과의 이별로 인해 내 안의 잠재되어 있던 우울은 외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려 3년을 만난 사람에게 우리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라는 말에 헤어지자고 내가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아마 그 사람과 나의 마지막은 항상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맞지 않냐며 묻는 말엔 글쎄, 나는 만화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넌 안 좋아하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땐, 그냥 이 사람은 나를 포기했구나. 내 입으로 이별을 말하게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그의 뜻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몇 달간은 괜찮았지만, 그가 환승이별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내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무려 나와 만나고 있을 때부터 환승을 준비했다는 사실에 분노했으며 자책하기도 했다.
이런 나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 속은 우울이라는 깊은 수령 속에 빠져갔다.
그깟 놈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우울증에 걸려? 나약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할 수 있지만 ‘첫사랑’,
다들 첫사랑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은가.
예전 동료가 자신은 자신의 첫사랑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어도, 그 사람과 헤어지고 본인에게 돌아와 달라고 하면 지체 없이 첫사랑에게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에이 너무 과장하네 어떻게 애 딸린 이혼한 사람이 다시 만나자고 한다고 바로 만나?'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물론 내가 그럴 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사랑이란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놈 때문에 내 안에 우울이 생겼다고 말한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그 사람 때문에 내 우울이 발현되었냐고 묻는다면 맞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사랑은 나에게 깊은 내면의 우울감을 발현시켜 준 사람으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한 억울함과 미움과 관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온갖 슬픔들이 섞여 나는 하루하루 말라갔으며, 하루하루 눈물로써 밤을 지새웠다.
밤에 떠있는 환한 달을 보며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울부짖었으며 제발 이 고통이 끝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고 점차 우울의 고통은 끝나는 것이 아닌, 줄어드는 것 임을 알았다. 첫사랑의 상처가 온전히 아물기도 전에 다른 아픔이 그 자리에 자리 잡았고, 계속해서 상처는 깊어졌다. 그렇게 나는 첫사랑이 남긴 상처가 짙은 흉터로 변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 눈물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일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나의 우울증은 잠재성이 짙어, 언제든지 발현되었을 것이지만, 첫사랑이 나의 깊이 잠자고 있던 우울을 꺼내준 사람이라니, 그리 좋은 첫사랑의 에피소드는 아닐 것이다.
남들은 첫사랑이라 하면 아련하고 깊은 추억에 젖어들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 독자들 중에서는 부디 아픈 첫사랑을 하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