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나에게 우울이라는 상처를 낸 사람이었다면,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생채기를 내어, 흉터로 만든 사람은 나의 아빠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교육이라는 방법으로 행해진 폭력은 나를 항상 위축되게 만들었고, 폭력과 막말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진행되어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첫 폭력은 아마 훨씬 그 이전이겠지만 내가 인지하는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이다. 당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나에게 아빠는 빗자루를 들어 학교에 가라고 다그쳤다. '세게 한 대 맞고 학교 갈래, 살살 10대 맞고 갈래' 어린 나이에 맞는다는 말에 막상 울음이 터져 나와 아무 사고도 하지 못한 채 노란 장판과 검은 옷장만 바라보고 있었고 학교에 늦는다며 빨리 대답하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나의 첫 폭력의 기억은 이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훈육이라는 방법하에 이루어진 폭력들은 나의 마음속에 어느샌가부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번은 수학에 약한 나를 가르치겠다고 그날도 빗자루인지, 옷걸이인지 뭔가를 들고 와서 한 문제 틀릴 때마다 나의 종아리를 때렸는데, 종이리를 때리다가 본인의 성에 못 이겨 나의 종아리가 터질 때까지 맞은 적이 있다. 그러곤 다음날 걷지도 못하는 나에게 '병원에 가서 아빠한테 맞았다고 하면 죽는 줄 알아'라고 말하는 아빠의 말에 나는 의사 선생님께 그냥 다쳤어요.라고 둘러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온통 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울고 있는 나의 모습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마음속 응어리에는 항상 위축되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 아빠가 물건을 집어던지며 막말한 그날 나는 맞아 죽어도 좋으니 나의 속 안에 있는 응어리를 뱉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너의 어린 시절이 나에게 맞은 기억밖에 없냐며,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의 말을 되새기며 어떻게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냐며 내가 널 위해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를 탓하며 우는 아빠에게 내가 해줄 말이 뭐가 있겠는가. 항상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아빠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나를 탓하며 우는데 그런 아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내 어린 시절이 망했으니까 책임져라 던 지, 꼴좋다든지, 시원한 말을 전해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여린 것이었던지, 아니면 그냥 아빠의 눈물을 처음 봐서 당황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과 울음을 삼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의 응어리들을 완전히 풀고 밖으로 토해내 내 속 안에 감추는 일이 없었어야 했다. 그래야 내 안의 우울함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응어리들과 별개로 성인이 된 이후 아빠와 나는 첨예하게 대립하곤 했다. 아빠의 말투, 행동, 사고방식 등 모든 것에 대해 나와는 다른 아빠가 난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생겨난 아빠와의 갈등은 결국 나의 상처에 생채기를 내며 그렇게 나의 조그맣한 우울이라는 상처는 항상 아빠와의 갈등으로 더 큰 상처로 번졌고, 결국 흉터로 남아 이제는 지울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어제도 아빠는 나에게 '약은 언제까지 먹니?'라며 물어봤다. '글쎄, 나도 모르지.'라고 대답한 후, 나는 내 속 안의 우울의 흉터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본다. 아빠로 인해 생겨난 흉터를, 아빠가 생채기 낸 흉터들을, 없애보려고 해도, 없어지지도 않는 그런 흉터들을,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물어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참 힘들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걱정돼서 물어본 말이란 걸 안다. 자식의 우울을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한편으로 더더욱 슬프기도 하다. 아빠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부모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니, 본인도 처음 부모가 된 것이니,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는 정당화를 해보지만, 난 아직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 그 정당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간 나도 그 입장이 되어본다면,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아빠에 똑같은 물음에 나도 몰라- 라며 답을 회피하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