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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적 우울증

by 정은하


누군가 내게 물었다. 우울함이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것일까?


글쎄, 잘 모르겠네. 하곤 말을 흐렸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랬다.

처음 우울하다는 감정을 인지한 것은 15살 때였을까.

한참 사춘기니 뭐니 하면서 부모님은 날 밥을 같이 먹자 하면 대답도 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려 밥도 함께 먹지 못하는 사춘기 중학생으로 판단했을 뿐, 나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나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봐서 그 폭풍 속의 혼란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었다.

15살이 경험하기에 우울이라는 감정은 너무 버거웠으며, 삶의 무게라는 것들을 처음으로 느껴보면서, '아 너무 무겁구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 종일 했었다.

15살이 뭐 그렇게 우울할게 뭐가 있어?라고 묻는다면, 흔히 말하는 사춘기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사춘기라고 하기엔 죽음과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

15살 중학생이 죽음과 가까워져 있을 이유는 뻔한 것 아니겠는가. 학교 성적의 대한 압박과 엄마의 폭언,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죽음과 친구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나의 성적보다는 나보다 잘난 언니의 대학입시에 더 관심이 많았고 나도 언니만큼 해내라는 무언의 압박이 나를 옥죄어 왔다.

그 예민함을 밖으로 표출하다 보니, 부모님은 나를 벌레 보듯 취급했고, 이어진 엄마의 폭언.

그렇게 공부도 못하고 살 것이면 몸이라도 팔아서 돈이라도 벌어오라는 말을 들은 밤엔 그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육의 한 방법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했던 아빠의 밑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종아리나 엉덩이를 맞으면 다행, 아무거나 잡아서 던지는 날에는 꼼작 없이 던져진 물건들을 피해 가며 제자리로 돌리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이런 폭력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으며, 하루하루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그때 처음으로 우울함을 느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으며, 또, 처음으로 내 몸에 상처를 내어 나 이렇게 힘들어요.라는 생떼를 부렸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한 무관심과 너만 힘드냐는 질책 어린 말들 뿐이었고, 그 말을 들은 그때는 되려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우울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족들이 나를 병균 취급하는 게 싫어서, 나의 마음의 아픔을 감추고 지우려고 했다.


그래서 잘 되었냐고? 보시는 것과 같이 30살이 지난 지금도 나는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달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우울증이라는 감정이 과연 15살 때 생긴 후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나에게 잠재되어 있던 감정이 발현되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래 그렇게 나는 15살 때부터 본격적인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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