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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by 정은하 Feb 19. 2025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 보면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의 대학생활은 원만하지 않았다. 고3 시절 원하지도 않던 학과였지만 내 성적에 맞춰서 안전하게 쓴 유일한 학과. 그 학과가 사범대였고 그렇게 사범대에 별 다른 선택지 없이 입학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과의 졸업요건은 한능검 3급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유없이 일찍 공부를 시작한 나는 역사에 빠져들기 시작해 역사학과를 복수전공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역사 자체가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본전공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한 동기와 서로 다툼이 있던 이후, 그 동기가 남긴 유언비어들은 명수가 작은 학과에 소리소문 없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많은 동기들과 선배들, 후배들이 나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며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소문들이 그렇듯이 눈송이 하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소문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랬다. 한순간에 나는 한 동기에게 모질게 굴며, 우월함 속에 살고, 남자들에게 미쳐있는 그런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나의 마음이 단단해지기 전이라 그러한 말들에 상처받고 회피하고, 자퇴하겠다며 아무도 없는 복도에 주저앉아 울다가 외국인 교수님이 날 발견하여 다른 타 과 교수님들과 면담하는 그런 상황도 발생했었다. 그때 영어영문학과 교수님들이 없었더라면 난 정말 자퇴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항상 나중에 찾아뵙고 감사함을 전해야 할 하다가 매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그래, 나는 역사에 매료되었지만 역사를 현실 회피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단순 회피 수단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정말로 역사의 과거의 발자국에 매료되었으며, 남아있는 유적지들에 경의로움을 느꼈으며, 그 과거의 시간들이 나에게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역사에 매료되어 나는 역사선생님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었었더랬다. 물론 잘 되지 않았지만.


내가 역사를 왜 좋아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의 세월을 느낄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역사의 대부분의 나라의 흥망성쇠의 얘기라지만 그 와중에 개인의 역사가 담겨있음에 신기했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는 아닐지라도 같은 고민과 같은 발자취를 경험했구나 하는 깊이감을 느낄 수 있어서 역사가 참 좋았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서 한 인간의 역사 또한 누군가에 의해 기록될 것이고 기록되진 못해도 기억될 텐데 나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 것일까? 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 했다. 내가 죽는다면 나의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나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할까, 슬퍼할까 위로해 줄까 안타까워할까? 나의 역사가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그게 참 궁금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아직도 나의 삶의 평가에 대한 호기심은 넘쳐나지만 나의 사후의 역사를 내가 직접 볼 수 없으니 상상이나마 해보며 나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역사교과서 한 귀퉁이에 나올 만한 사람처럼 대단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엔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져 나가는 삶들이 계속되길 바랐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나의 역사책이 조금이나마 길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역사는 소소하지만 가끔 행복한 일들도 질기게, 끈질기게 이어져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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