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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금테를 두른 듯이 빛나는 왕릉

신라 제26대 진평왕(567년~632년)

by 작가의숲

내가 진평왕릉을 처음 본 건 조금 특별한 인연 덕분이었다. 오래전 경주 낭산의 동쪽 자락에 작은 암자를 짓고 기거하던 한 스님이 계셨다. 경주 낭산(狼山)은 해발고도 115m, 102m, 100m의 봉우리 3개가 연이어 있고 하늘에서 보면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이다. 조금 높은 언덕쯤으로 보일 만큼 야트막하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곳이다. 서라벌의 진산(鎭山)이었고 심장부를 상징하던 공간이었다. 스님이 계시던 곳은 황복사지를 지나 잠시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을의 끝이었다.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전망이 무척 좋았다.


스님을 뵙고 차 한 잔을 마실 때였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찻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평왕릉을 봤다. 창문 안에 정확하게 진평왕릉이 담겨 있었다. 창문이 큰 액자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그 순간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진평왕릉에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지만 들판 너머 봉긋하게 솟은 곳이 왕릉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스님에게 저기가 혹시 진평왕릉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렇다고 했다. 그야말로 작품이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스님조차도 무슨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창을 그렇게 낸 게 아니라는 거였다. 그저 그곳에 창을 냈더니 정확하게 진평왕릉이 들어왔다는 거다. 우연이지만 우연 같지 않은 기분에 휩싸였던 그날, 그래서 낭산이 신라의 진산이구나 싶어 약간은 들뜬 기분이었다.


진평왕릉은 보문들과 백이들로 이어진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늦가을, 진평왕릉으로 가는 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저녁노을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변한 들녘은 해가 완전히 서산을 넘어갈 때까지 바라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여물은 벼이삭이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계단처럼 점점이 낮아지는 논두렁이 금테를 두른 듯이 빛났다. 나는 ‘경주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를 몇 번이고 내뱉었다. 풍경이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실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8세기경 서라벌에는 17만 9천 호가 있었고 그중 금테를 두른 집이 서른아홉 채나 있었다고 하니 태평성대를 이루었을 때 신라의 모습도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구나 보문들의 층층이 놓인 논은 모두가 곡선이다. 반듯하게 선이 그어진 곳은 거의 없다. 어쩌면 천년 전 서라벌의 들녘도 비슷했을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진평왕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신라의 수많은 왕릉이 숲 속에 있다면 진평왕릉은 마치 ‘백성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장식이 있거나 화려함이 넘치는 곳도 아니다. 주변보다 유난스레 높거나 별도의 울타리가 있는 것도 딱히 아니다. 그저 너른 들판에서 마지막 논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왕릉을 둘러싸고 있는 수목도 특이하다. 여느 왕릉이 소나무에 둘러싸여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이곳은 왕버들나무나 느티나무 종류가 많아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낭만적이다. 겹벚꽃이 흐드러진 계절에는 이곳만 한 꽃길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평왕릉의 백미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 있되 전혀 권위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진평왕릉은 일 년 내내 변하는 곳이다. 그때마다 다양한 색을 가진다.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에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함을 만날 수 있고,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주변을 가득 채운 초록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가을에는 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변하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고, 설령 앙상한 가지만 남아버린 겨울이 와도 쓸쓸하기보다는 오히려 고즈넉하고 담백하다. 진평왕릉의 어느 한편에서 일 년 내내 서 있는다 해도 전혀 답답하지 않을 그런 변화무쌍함을 만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진평왕릉에 가면 잠시 신라의 왕이 되어 서라벌을 여유롭게 한번 굽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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