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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1

by서정적인 너무나 그런Jan 24. 2025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1,000여 편의 시를 쓰고 시집도 15권이나 발행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그의 시 중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외울 수 있고 또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시 '푸르른 날'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먼저 시의 제목인 '푸르른 날'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시 본문에서 '푸르른 날'이 그냥 푸르른 날이 아니라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이라고 더욱 선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나기라도 한차례 내리고 난 후의 한여름의 파란 하늘이나, 또는 가을의 그 높디높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시인은 이런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합니다.


 두 번째 연에서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는 갑자기 찾아온 가을 정경에 놀라는 모습입니다. '아니 저기 좀 봐, 벌써 가을이 왔다고?' 하며 언제 꽃이 지고 그 자리만 남고 벌서 가을이 왔지 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느닷없이 단풍이 드는 가을을 맞게 됩니다.

 그러고 그다음 연부터 갑자기 시가 좀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나지 않으신가요?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이렇게 눈이 내리고 또 봄이 오고 계절이 바뀌다가 급기야 '내가 죽거나 네가 죽는 다면?'하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푸르른 날'과 이 부분을 어떻게 연결해 보아야 할까요. 눈이 내리거나 또 봄이 온다고 하여도, 그리고 우리기 나이가 들어감에도 그리운 사람을 얼마든지 그리워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푸르른 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시인이 말하는 푸르른 날은, 여름 혹은 가을날 하늘이 푸르른 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푸르른 날, 바로 청춘의 날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그 젊은 청춘의 시기에 마음껏 사랑하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꼭 해야 할 일들이, 그때 밖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나요. 그래서 시인은 다시 강조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바로 청춘의 날에 그리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자고 말입니다.


 인생에서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고 즐기라는 뜻을 가진 말로, 서양에는 로마 시대 때부터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님이 오직 명문대 입학이라는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칩니다. '시간이 있는 동안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그리고 이것이 '카르페 디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우리는 인류의 한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쓰고 읽는다는 것'을, '의학, 경제, 기술과 법률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키딩 선생님이 위에 인용한 시 구절은 로버트 헤릭( Robert Herrick)의 시 '청년에게 주는 충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동안

장미 봉오리를 모아라. 

지난 시간은 끊임없이 날아가며

오늘 미소 짓는 바로 이 꽃도 

내일이면 죽으리(중략)


그러나 수줍어 말고, 시간을 선용하라.

그리고 할 수 있는 동안, 결혼하라

청춘을 한번 잃으면

영원히 너희들은 기다려야 하리."


 이렇게 그가 첫 수업에서 가르친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있기에 현제의 청춘을 즐기고 할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 즉 그 시기에 맞게 사회의 속박과 규범을 깨고 인생을 열정적이고 충실이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르페 디엠'의 뜻입니다.

 여기 이 '푸르른 날'도 이런 비슷한 것을 전하고 있지 않나요? 세월이 가는 것과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죽거나 네가 죽거나 하는 것이니까요.

 

 이 시는 1946년, 시인이 21세가 되던 때 쓴 것입니다. 이때는 해방 직후 하루하루 끼니가 걱정되던 그런 힘든 시기였습니다. 생활은 지극히 가난해도 마음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쓰일 수 있군요.


 또 이 시가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것은 가수 송창식이 이를 가사로 하여 작곡하고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느 날 방송국에 출연했다가 시인의 애제자인 문정희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서정주 시인을 지금 뵈러 간다고 하니 송창식이 같이 갈 것을 제의하여 처음으로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시인에게 시를 하나 천거해 주면 작곡을 하고 싶다고 제의했더니 바로 이 시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송창식은 집에 돌아와 하룻밤 사이에 작곡을 하고 시인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각각의 시구가 5.5조의 정률로 쓰여 있기 때문에 노래로 부르기 쉬울 것으로 생각해서 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 송창식의 '푸르른 날'을 한번 들어 볼까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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