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14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책을 한 권 쓰면 서문(序文)을 씁니다. 윤동주시인은 본인의 시를 엮어서 한 권 시집을 만들고 서문을 대신해 이 시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제목을 ‘서시(序詩)’라고 썼습니다.
이 시는 그의 전체 시의 밑바탕을 이루는, 시인으로서의 정신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시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어 한마디 한마디를 잘 음미하며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점’의 부끄럼도 없기를, 거기다 ‘죽는 날’까지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첫 연에서부터 주눅이 듭니다. 어떻게 이렇게도 순수하게, 아니 거룩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아직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청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다짐이라고 해도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첫 연이 주는 큰 울림,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깊은 마음의 한구석에는 조금이라도 이 시인을 닮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다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뜻일까요? 윤동주 시인의 그 순수한 감성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도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지만, 아니 그럴수록 우리는 이렇게 잎새처럼 흔들리는 우리 마음에 갈등하기 마련입니다.
시인이 쓴 시 중에는 이러한 그의 이상과 현실 속의 여러 갈등을 표현하는 구절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여기 ‘서시’의 시인의 마음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시인의 다른 시, ‘별 헤는 밤’에 그는 별을 통하여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봅니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憧憬’과 ‘시’와 어릴 적 친구들과 그리고 ‘어머니’를. 이렇게 시인에게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고 그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 마음으로 세상의 생명이 있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가 시를 쓰는 목적으로 느껴집니다. 시로써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생명들을 노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길은 무엇일까요. 이 시를 쓸 즈음은 시인이 학교를 졸업하고 그의 진로를 생각해야 할 때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그에게 ‘주어진’ 길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주어진 길은 시인의 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 자기에게 맡겨진 길에서 그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지겠다고 다짐합니다. 또 그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공자 (孔子) 같은 대단한 사람도 50세에 이르러서야 ‘知天命‘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20대 초의 청년으로 벌써 자기한테 주어진 길을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인데, 대단하지 않나요?
우리가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알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으로서 자기의 지향하는 바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는 시인이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연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맺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소슬한 바람이 부는 가을인가요, 아니면 추운 겨울밤인가요. 아니면 꽃 시샘하는 봄바람인가요. 시인은 별이 바람에 스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마음에 봄 여름 할 것 없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요. 시인은 시인으로써 걸어갈 길을 이렇게 다짐하고 있지만, 그도 이 가야 할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시 ‘쉽게 씌어진 시’에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쉽게 씌어진 시) 부분
왜 시인이 ‘슬픈 천명’이라고 할까요. 인간 윤동주가 생각하는 시인은 어떤 다른 시인과는 다른, 위의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의 바로 그 천명, 즉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 길이 스스로를 한 점 부끄럼 없이 갈고닦아야 할 길임을 아프도록 자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의 마음에 스치는 바람, 즉 한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연희전문에 다닐 때 쓴 시를 묶어 시집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손수 손으로 쓴 시집을 몇 권 만들고, 이 시집의 첫 시로 이 ‘서시’를 올려놓았습니다, 시집 이름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시집은 윤동주 시인 死後에야 발행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청년 ‘윤동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한 사람 ‘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