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
여주 장날
옛날 흥부가 심었다던 박 모종 하나 사서
텃밭 구석에 심어 두었다.
이 놈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옆의 그 잘 뻗어 나가는 작두콩도
덮어 버릴 지경이다.
그러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어른 손바닥 만한 하얀 꽃이
쑥쑥 올라온다.
손바닥 만한 하얀 꽃
어머니 모시 저고리보다
더 흰, 순수의 극한(極限)
이걸 또 한밤 허연 달빛 아래서 본다면
무슨 소복 입은 여자 귀신이라도
그 큰 꽃잎 위에 떡하니
앉아 있을 것 같아
나는 밤에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텃밭 농사 10년에 처음으로 박을 심어 보았습니다.
흰색 꽃이야 백목련, 무궁화 등등 있지만
박꽃의 하얀색은 어찌나 흰지 세상에 어떤 흰색보다
순수한 흰색, 말 그대로 순백색(純白色)입니다.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뭔가 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입
니다.
어떤 순수한 것을 대할 때 갖는 경외감 같은 그런
것일까요. 그리고 특이한 것은 저녁 무렵 꽃이 피기
시작하여 밤에만 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