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꽃

by kacy

박꽃


여주 장날

옛날 흥부가 심었다던 박 모종 하나 사서

텃밭 구석에 심어 두었다.


이 놈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옆의 그 잘 뻗어 나가는 작두콩도

덮어 버릴 지경이다.


그러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어른 손바닥 만한 하얀 꽃이

쑥쑥 올라온다.


손바닥 만한 하얀 꽃

어머니 모시 저고리보다

더 흰, 순수의 극한(極限)


이걸 또 한밤 허연 달빛 아래서 본다면

무슨 소복 입은 여자 귀신이라도

그 큰 꽃잎 위에 떡하니

앉아 있을 것 같아

나는 밤에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텃밭 농사 10년에 처음으로 박을 심어 보았습니다.

흰색 꽃이야 백목련, 무궁화 등등 있지만

박꽃의 하얀색은 어찌나 흰지 세상에 어떤 흰색보다

순수한 흰색, 말 그대로 순백색(純白色)입니다.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뭔가 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입

니다.

어떤 순수한 것을 대할 때 갖는 경외감 같은 그런

것일까요. 그리고 특이한 것은 저녁 무렵 꽃이 피기

시작하여 밤에만 피는 것입니다.


keyword
이전 15화고추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