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5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는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시골 작은 텃밭에 상추나 감자, 옥수수 이런 걸 조금씩 심어 놓고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 먼저 챙겨 보는 것은 날씨 정보입니다. 비는 언제 얼마나 오는지, 기온은 얼마나 내려가는지, 이런 걸 보면서 가끔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한참 가물다 천둥소리라도 들리면 반갑고 고맙고 그런 마음이 됩니다.
한 송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까지 참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의 도움입니다. 비도 적당히 와야 하고 바람도 불어 병충해 피해도 줄여야 하고, 또 벌이나 나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햇빛도 충분히 받아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 내내 죽은 것 같던 국화 줄기는 땅 위로 조금씩 새싹을 올려 보냅니다. 이때 들과 산에서는 온갖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위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오색딱따구리, 딱새, 멧새, 박새 등이 먼저 울어대고 한참 지나 뻐꾸기도 웁니다. 이때가 짝짓기 철이라 각종 새 우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대단합니다.
서정주 시인은 특히 소쩍새를 좋아합니다. 온갖 식물들이 다시 소생하는 봄의 상징으로 이렇게 소쩍새를 선정한 것이겠지요. 그의 자서전 격인 '유정천리'의 글에 보면 시인이 젊은 시절 잠시 해인사 인근에 머물러 있을 때 '수백 마리의 소쩍새가 산골이 기울어질 만큼 울어대던 소리가 나의 마음속의 여러 영상 중에 중요한 것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쩍새는 야행성이라 밤에 주로 울어대니 산속 홀로 누워서 듣던 그 소리는 '산골이 기울어질 만큼' 크고 요란해서 잠 못 이루었을 겁니다.
옛날 달력도 변변히 없던 시골에서는 어떤 특정한 새가 우는 소리를 기다려 식물을 심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지방에서는 '뻐꾸기 울면 고구마 심을 때'라고 합니다.
천둥은 이제 여름이 왔음을 말합니다. 국화도 여름이 되면 땅에서 작년보다 많은 줄기들이 올라와서 잎도 무성해지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새가 우는 것하고 천둥이 치는 것이 꽃이 피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과학교사들이 학교에서 희롱조로 문학의 비과학성을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을 예로 들기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표현이야 말로 시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요.
시인은 국화꽃을 여인에 비유합니다. 어떤 여인인가요. 젊은 시절이 한참 지나고 이제는 혼자의 몸이 된 듯한, 그러나 결코 아름다움을 잊어버리지 않은, 그래서 가만히 자기 모습을 겨울에 비춰 볼 수 있는 그런 중년쯤 된듯한 여인의 느낌입니다. 국화꽃이 그런 꽃인가요?.
국화 향은 또 어떤가요. 라일락처럼 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그 향이 진한 꽃도 있지만, 국화꽃 향기는 우리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야만 겨우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 은은한 향, 그런 중년 여인의 향기, 인생의 가을쯤 들어선 여인을 시인은 가을의 국화꽃에서 생각해 냅니다. 국화를 은둔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으로 여겨온 것과는 참 대조적 이미지의 표현입니다.
국화꽃은 우리 주변에 피는 꽃 중에 한참 늦게 핍니다. 봉오리는 8월이 지나서야 서서히 나오고 시월이 되어야 그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무서리( 처음 내린 약한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피는 그런 꽃입니다.
이 시는 봄, 여름, 가을, 즉 계절의 변화를 따라서 쓴 시입니다. 그러나 시의 바탕에 깔린 것은 무슨 불교의 어려운 용어를 빌리지 않아도, 모든 사물의 그 생김이 어디 하나 절로 된 것이 없다는 그런 뜻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와 함께 온 우주 만물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서로 돕고 개입한 결과라는 것을 국화꽃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 송이 꽃을 피우려 수백 번 태양과 별과 달이 국화 위를 지나며 그 자라남을 보살피며 애태웠을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이런 온갖 존재들의 의미와 관계를 생각하면서 때로는 잠들 수 없는 수많은 밤들이 있었을 겁니다.
미당은 1947년, 그가 32살 되던 가을 어느 날 밤, 잠이 잘 안 오던 끝에 그의 집 뜰에 피어있는 국화꽃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는 '이 한 편의 시 속에는 삼십 대 사내의 소년 시절의 흔적이 묻어 있는 것이다.'라고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 시대의 흔적'이란 아마도 시인이 초등학교 시절 1년의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담임을 맡았다가 일본으로 떠난 일본인 여교사, 이후 그의 '마음 속의 여러 영상 중의 중요한 것의 하나'가 된 이 여성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또 이 시절 동내 침모 아주머니가 자주 베겟모에 수놓던 '눈부신 노랑의 국화꽃'에 대한 기억 등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우리도 때로는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변화하려고, 아니 베란다 창틀에 놓인 제라늄꽃이라도 피려고 그러나 하고 생각하면 잠이 잘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