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아서

시간을 밟고 15화

by 금희

지훈은 초조했다.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는 거칠게 속도를 높이며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수영을, 찾아야 했다.

동료가 말한 사고 현장은 이곳에서 네 시간 거리.
주변엔 남쪽 방향으로 두 시간 거리의 원주민 마을 하나가 전부였다.

“어디 들러 오느라 새벽에 운전했는데, 사고가 났더라고. 트럭이랑 차 세 대가 멈춰 있어서 봤더니 , 눈에 처박힌 차를 꺼내고 있더군. 운전자가
동양인 여자던데... 그 도로가 밤에 잘 안 보여서 여차하면 언덕에 굴러. 그나마 눈이 쌓여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훈은 직감했다.
그녀다. 수영이다.

아직 견인 요청도 없고 사고 접수도 되지 않았다는 건, 어딘가에 발이 묶였거나, 혹은 이곳의 사고 처리방법을 모른다는 뜻이었다.
‘다친 것 같진 않더라’는 그의 말에도 지훈의 가슴은 거칠게 뛰었다.
그녀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하지만,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초조와 왠지 모를 분노가 차올랐고
그 감정은 액셀러레이터에 실려 속도가 되었다.


이틀 전,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수영이 병가를 냈다는 말을 듣고 지훈은 용기를 내어 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는 구했어요."
담담한 목소리였다. 폴의 소개로 중고차를 샀고 상태도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한 번 봐줄게요. 정비 쪽은..."
지훈이 말을 잇자, 수영은 단호히 거절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착잡했다.

아니, 조금 화가 나려 했다.
이 나라의 겨울이 어떤지, 얼어붙은 도로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는 정말 알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손길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답답했다. 애처로웠다. 그래서 또 화가 났다. 그래서,
지훈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자신의 마음이 닿지 않는 일에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었다.

오늘 ,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사고 현장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눈 위로 검고 뚜렷한 타이어 자국이 급경사진

언덕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지훈은 한눈에 그것이 과속으로 미끄러지며 제어를 잃은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자국을 따라 차를 세웠다.

전신주 사이로 짓밟힌 나뭇가지, 움푹 파인 눈자국,

차는 더 이상 거기 없었지만 사고 현장은 아찔한 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지훈은 ,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눈 속에 파묻힌 채 그녀는 혼자 있었을 것이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수영의 번호를 눌렀다.

번이고. 그러나 신호는 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놓쳤다는 느낌.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공포. 손끝까지 전해지는 불안.

뒤늦은 자책과 막연한 분노가 동시에 올라왔다.

그녀가 왜 그의 손길을 밀어냈는지, 이제는 묻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어딘가에서 떨고 있지 않기를,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장 가까운 정비소는 두 시간 거리에 한 곳, 지훈은 원주민 마을로 향했다.

예상대로, 정비소 직원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레카를 권했는데, 직접 운전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앞범퍼는 덜렁거려서 저희가 떼줬고요.

차체는 좀 찌그러졌지만, 크게 속도만 안 내면 큰 문제는 없다고 했더니 그냥 몰고 갔어요. 한 두어 시간쯤 됐어요.”

지훈의 얼굴이 굳어지자, 직원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수영이 이곳에서 떠났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이 되었다.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 그 몸으로, 그 차로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무얼 위해, 왜 아직도 이 길 위에 있는 걸까.

지훈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차로 여행을 계속할 만큼 그녀가 무모하진 않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돌아가고 있을 거라고, 지훈은 자신을 안심시켰다.

억누른 확신처럼, 짓누르는 불안 속에서 지훈은 급히 방향을 꺾었다. 더는 늦어질 수 없었다.


눈발은 조금씩 거세졌다.
도로의 윤곽이 차츰 흐려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어지면, 이 영하의 날씨 속에서 그녀는 다시 길을 잃거나, 아니,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빛나는 얼음 뒤에 숨겨진 백색의 자연은 언뜻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매혹이 항상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지훈은 알고 있었다.

정비소로 실려 오는 차량들.
눈에 덮여 망가진 채 들어오는 처참한 모습들은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찔했다.

그래서 지금, 더 그녀가 걱정되었다.
어쩌면 자신 말고는 지금 그녀를 지켜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며 지훈은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핸들을 움켜쥔 그의 손엔 확신도, 평온도 없었다. 불꽃같은 희망만이 길 잃은 파랑새를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