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6.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할 때

by yeon

어디선가 봤던 이야기이다.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본인이 일하는 곳 주변을 둘러보라고.. 근처에 앉은 직장 상사를 보면 나의 미래가 보인다고..


꼭 직장에 국한된 이야기 같지는 않다.


발병 1년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고 새로 옮긴 병원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병원의 시설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통 뇌졸중 환자는 발병 시기에 따라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정해져 있다. 치료수도 발병일에 따라 그 수가 달라진다.


2년을 대체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애매한 1년 2개월 차에 옮기게 되었고 급성기에 많이들 입원하는 회복기 재활병원으로의 전원은 불가한 상황이었다.


보통 그럴 경우 일반 재활병원이나 재활을 하는 요양병원으로 많이들 옮기게 된다.


그렇다. 재활 때문에 이동해야 하는 재활난민인 것이다.


새로 옮긴 곳은 재활병원이긴 했지만 요양병원에서 재활병원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전 회복기 재활병원에서는 모두들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활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재활을 하면 나아지겠지란 희망을 가지고 환자도 보호자도 임하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현실에 임하고 환자를 일상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한 열망이 가득한 곳이었다면


새로운 곳은 발병한 지 꽤나 지난 분들이 많았다. 적게는 2~3년에서부터 많게는 8~10년을 병원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전 병원과는 또 다른 분위기..


초연한 듯, 체념한 듯 하지만 재활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3년 만에 걷기 연습을 시작하는 환자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고, 8년 만에 기계의 도움을 받아 첫 발걸음을 내딛는 환자를 보며 가슴 아팠다가, 10년이 된 환자와 보호자를 보며 무서워졌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될까 봐..


엄마는 조금 걷는 게 가능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엄마를 낫게 하겠다고 10년을 병원을 전전하며 생활하게 되는 모습이 내 모습이 될까 봐 불현듯 무서워졌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재활을 하는 건데 재활을 하느라 집으로 가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발병 초에는 의식이 없다가 의식을 차려도 기적 같고, 목도 못 가누던 사람이 앉혔을 때 스스로 버티기만 해도 호전된 것 같고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같았다. 기적은 멀지 않고 이전으로의 생활도 기적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다. 보통 급성기라 부르는 발병 후 6개월 이후부터는 호전 속도가 미미하다.


1미터를 처음 걷고 난 후 1미터 30센티를 성공했다고 호전됐다고 느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엄마는 여전히 누워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일어날 줄 몰랐으며 기저귀를 차고 생활했고, 목마르다는 표현도 하지 않았기에 옆에서 주기적으로 물을 먹여줘야 했다.


방향을 스스로 잡아서 걸을 줄 몰랐고 눈앞에 차려진 밥상에서 반찬을 찾아 먹을 줄 몰랐다.


이대로 나도 5년이고 10년이고 이렇게 병원에서만 지내게 되는 생활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끝 모를 두려움에 엄마와 함께 오래가기 위해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7화25. 짜증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