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준비 끝에 엄마와 함께 집으로 퇴원을 했다. 1년 8개월간의 병원생활이 끝난 것이다.
아직 엄마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조금은 걸을 수 있었기에 무작정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온 순간 나는 보호자이자 의사여야 했고 간호사이면서 간병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치료사도, 영양사도 되어야 했다.
집에서의 생활이 병원에서의 생활보다 힘들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치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적어도 병원에선 환자식사는 나오고 환자복도 세탁되어 나왔지만 집에선 그것마저 온전히 내 몫이었기에 하루가 너무나 바쁘게 돌아갔다.
음식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어 음식 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오래 걸리다 보니 오래 서있어야 했다. 그럴수록 엄마 혼자 눕혀두는 시간이 길어지니 재활을 못한다는 강박으로 마음은 불편해져 왔다.
재활은 계속해야 되기에 통원으로 재활을 할 수 있는 병원에 대기를 걸어뒀지만 바로 자리는 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매일 하루를 재활로 보내다가 집으로 온 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끌고 나가서 걷기도 했고 집안에서 운동도 시켜야 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엄마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고 깨워서 씻기고 아침을 차리고 밥과 약을 먹이고 치우고 재활을 시키고 다시 점심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처음 2~3주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끔 정신이 없었다. 엄마재활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방문간호부터 방문재활 바우처등 정보도 알아봐야 했고 여러 가지 신청도 해야 했기에 그냥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게 돌아갔다.
대기해 뒀던 병원에서 연락이 한 달 정도 뒤에 와서 다행히 재활을 시작할 수가 있고, 방문재활도 지자체에서 지원되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했다. 엄마의 재활 스케줄이 안정되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완전히 안정되기까지 2~3개월 정도가 걸렸다.
음식 하는 것도 이젠 손에 익어 점차 하는 시간도 줄어갔고 집에서의 생활이 조금 익숙해져 갔다. 하루 종일 엄마에게 맞춰진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웠는데 불현듯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왔다.
이젠 친구들과의 카톡 연락도, 업무적인 연락도 없는 휴대폰. 병원에선 그나마 다른 보호자나 환자들과 소통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하루 종일 엄마 외에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회와의 단절. 그랬다 나는 단절된 것이다. 그렇게 이 작은 집 안에 나는 고립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순간 누워서 올려다보는 천장의 도배지가 어색하게 보였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지긋지긋해졌다.
8평짜리 임대아파트. 20년 가까이 엄마와 둘이 살던 집.
이곳에서 벗어나 작지만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샀고, 이젠 이곳에서 벗어났다 생각했다.
독립은 내 발목을 붙잡던 어릴 적 지긋지긋했던 가난과 해체된 가정에서의 상처를 조금은 떨쳐 낸, 내 인생에서의 가장 큰 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내방은 창고로 변해있어 이젠 나만의 공간조차 없는 이곳으로 말이다. 진저리가 났다.
집을 매매하고 이사를 하면서 이제야 어릴 적 결핍으로부터 단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한걸음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다. 그 걸음은 공중으로 흩어졌고 난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