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뭐든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다음 면접 장소는 마트였다. 캐셔와 사무직을 구한다고 했다. 물론 여기도 급여는 최저시급이었다. 경력도 없고 단순한 업무라서 그 이상의 돈은 바라지도 않았다.

“ 여기 일이 학교와 달라서 힘이 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험한 말을 들을 수도 있어요.”

“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죠.”

“ 캐셔보다는 사무직이 어울릴 것 같은데. 흠.. 나이도 좀 있으시고. 여기서 쓰는 프로그램을 익히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어요.”

“ 배움의 속도가 빠른 편이니 걱정 마세요. 40세면 뭐든 새로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 아닌가요?”

뭐든 하고 싶다는 내 눈빛을 읽은 것인지 난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 화장실을 개조한 사무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있는 사무실은 과거에 화장실이었단다. (어쩐지 쿰쿰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라) 작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급하게 사무실로 만든 공간은 우중충한 색에 몇 개의 책상과 컴퓨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전부였다. 직원이 많지 않아서 사무실에는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한 달 정도 지나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난 사무실을 바꿔보기로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니 산뜻하게 변화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윗분들의 허락을 받아 일과시간이 아닌 주말에 작업을 시작했다. 전에도 곧잘 페인트를 칠하고 인테리어 스티커를 붙여본 터라 이 작은 공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루종일 붙이고 칠한 덕분에 사무실은 하얗고 산뜻해졌다. 물론 상큼한 향도 났다.

월요일, 직원들과 업체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화장실 변기 자리에서 일한다며 놀려대던 사람도, 우중충해서 커피 맛이 안 난다던 업체사람들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선을 넘었다.

“어이, 미스리. 커피 한 잔 줘요.”

그에게 벽을 가리키며 웃으며 말했다.

“커피는 셀프. 설마 못 읽는 건 아니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웃으면서 할 말 하는 거다. 굳이 인상을 쓰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된다.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미소를 장착하고 할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당황한다.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보인다.




그의 시선


사람을 고용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녀가 일한다는 마트는 내가 아는 마트다. 다행이다. 얼마 전 거래를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었다. 젊지만 열정이 넘치는 사장과 노련한 점장,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있다. 다시 본 그녀는 여전했다. 아니 더 활기차보였다. 점장은 주차장까지 와서 나를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네. 좋죠. 따뜻한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점장이 손수 커피를 타서 내 손에 쥐어준다.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커피는 셀프라서요.”

계약 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때 슬며시 직원들에 대해 물었다.

“요즘 사람 쓰기가 쉽지 않던데 여긴 어떤가요?”

“다 비슷하죠, 젊은 애들은 제멋대로고, 경력이 있는 사람은 말을 듣지 않아요.”

“그렇군요, 근데 경리는 한 명인 가보네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던데...”

“아,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일은 잘해요. 근데 약간... 뭐랄까...”

“또라이군요.”

머뭇거리는 그의 말을 내가 잇자 그는 호탕하게 웃는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어찌 알았냐면서. 일은 잘하는데 할 말을 따박따박 웃으며 한단다. 틀린 말도 아니고, 예의에도 벗어나지 않아서 뭐라 할 수도 없다고. 자기가 이 바닥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란다. 그녀답다. 또 한 번 그녀 덕분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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