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대가리가 맘에 안 들어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밖이 시끄럽다. 매장과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어서 매장 사정을 여간하면 알 수 없다. 오죽하면 친한 직원들에게 나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러 가끔 사무실에 와달라고 할까. 하지만 여기까지 들썩이는 걸 보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매장 입구. 콩나물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장 나오란다. 캐셔들은 한쪽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힘 좀 쓴다는 남자직원 하나가 할아버지를 달래고 있다. 하필이면 사장, 점장 모두 거래처에 나가고 없다.

“어르신, 사장님은 지금 안 계세요. 제게 말씀하시면 전해드릴게요.”

“아니. 너 같은 끄트머리 말고, 사장 나오라고 해.”

“전 사무실 직원이에요. 여기서 이러시면 다른 분들께도 피해가 돼서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경찰이라는 말에 살짝 누그러진 할아버지가 바닥에 널브러진 콩나물을 한 움큼 집어 들고 던지며 말했다.

“콩나물 대가리 봐. 다 상했잖아. 이런 걸 물건이라고 파는 곳이 어딨어. 이런 쓰레기!.”

내 앞에 떨어진 콩나물을 봤다. 물러터지기 시작한,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이었다.

“어르신, 콩나물이 많이 상했네요. 언제 사셨는지 기억나세요?”

“내가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냐”

막무가내로 돈으로 물어내란다. 영수증도 없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없다는 할아버지. 다른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여기 cctv 보이시죠. 저희 매장에 다녀간 손님은 다 찍혀있어요. 한 달 이내에 다녀가신 거 확인되면 두 배로 환불해 드릴게요. 저랑 같이 사무실 가서 확인하시죠. 제가 맛있는 커피도 타드릴게요.”

상냥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소리치며 나간다.

“내가 뭐 돈이 없어서 이러나. 재수 없게 시리.”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할아버지는 다른 마트에 가서도 같은 수법으로 위로금을 챙겼단다. 위로금을 챙겨주지 않은 곳은 우리 마트뿐이었다.

✔ 달콤한 은주씨

마트 직원 모두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야채코너에서 일하는 은주언니.

첫인상부터 살벌하다. 인상만 봐서는 작두를 타거나 부채를 펼쳐야 할 것 같다. 매서운 눈매로 쳐다볼 때면 괜히 죄지은 거 없이 떨린다. 실제 나이는 50대 중반이지만 60대로 보이는, 말투가 꽤 거친 언니다. 흥분하면 욕, 북한 사투리가 섞어 나와서 나는 언니의 정체를 한동안 의심하곤 했다. 언니가 창고에서 담배를 물고 있을 땐 남자직원들도 함부로 근처에 가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20대 후반의 남자직원은 은주 언니의 고함에 무서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넌 여기서 일할 사람 같지 않은데 전에 어디 있었냐?”

“여기서 일할 사람이 따로 있나요. 전에는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여전히 웃으며 말하는 날 바라보는 언니의 눈매가 날카롭다. 방금 전 신입에게 소리치던 언니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창고에서 언니의 최애 한라산 담배를 권했다.

“그 좋은데 있다 왜 이런 곳에 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좋은 곳도 다 진흙탕이더라고요.”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 이후로 우린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리만큼 친해져 있었다.


매장에 오랜만에 아기 손님이 왔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위태롭지만 앙증맞다. 이런, 하필이면 야채코너로 간다.

“아가, 거긴 무서운 사람이 있어. 이놈~~~ 하신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무조건 직진이다. 그리곤 요즘 금값인 청양고추를 들고 흔든다. 외국인인듯한 엄마가 말려도 소용이 없다. 은주언니가 이 모습을 봤다. 큰일이다.

“어머 어머머, 이 귀염둥이는 누구야.”

세상 간드러진 혀 짧은 소리로 은주언니가 말한다. 내가 잘못 들었나. 두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 은주언니였다. 아기가 갈 때까지 은주언니는 아기를 안고 내려놓지 않았다. 언니가 활짝 웃는 것도 처음이지만 혀 짧은 소리라니, 정말 신선한 경험이다.

“와, 언니도 그런 소리 낼 수 있어요? 어머머, 요 귀염둥이.”

내가 언니 흉내를 내자 언니가 흘겨보며 말한다.

“이년아, 재는 이쁘잖아. 다른 것들처럼 상처 주지도 않고.”

언니도 상처를 받나 보다. 그래서 아기가, 말 못 하는 강아지가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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