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끝은 그때를 향해 있었다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 나는 말이야


전화벨이 울린다. 매장인데 빨리 나와보란다. 서둘러하던 일을 정리하고 갔다.

근데 이번엔 좀 급이 다르다. 영어로 말한다. 그렇다고 외국인은 아니다. 분명 한국인이고 우리말도 알아듣는데 대답과 질문을 영어로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 영어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한 나는 유창하게 말은 못 해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의 영어질문을 우리말로 대답했다. 몇 마디 나누던 그가 나에게 왜 다 알아들으면서 영어로 대답하지 않냐고 묻는다.

“우리말이 좋아서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질문을 알아듣고 답을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공군 조종사였고 영어를 잘해서 미국에도 다녀왔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요. 원하시는 물건 찾았으니 이제 전 이만 가볼게요.”


은주언니가 사무실로 따라왔다.

“야, 저거 뭐라고 씨부린 거냐.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지는 한국말 못 한대?”

“아니요, 영어로 말하고 싶대요. 아니면 잊어버린다고.”

“그러면 미국에서 살아야지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그의 시선


영어도 제법이다. 물론 한마디도 안 했지만 분명 다 알아들었다.

근처에서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지만 두 귀는 그녀의 목소리를 향해 있었다. 대답은 정확하고 분명했다.

고용한 사람은 그녀가 교사 출신이라 했다. 딸 하나 키우는 이혼녀. 회사와 집,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취미도 없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무료한 삶이다. 사진 속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처음 봤을 때처럼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 모든 끝은 그때를 향해 있었다


아이가 아프다. 고열에 시달리며 힘겨운 숨을 내쉬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쓰리다. 내가 그때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아이가 아프지 않았을까. 안 좋은 일의 모든 끝은 그때를 향해 있다. 물론 다시 시간을 돌이킨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때 그 시간에 가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당시로 돌아가 같은 선택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가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비즈니스관계인 것을 이해할 만큼 커있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는 아기모습 그대로인데 말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쉽지 않았다. 나를 닮아서 순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상위 1%의 예민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이 아빠의 예민함을 간과한 탓일까. 아님 시어머니의 미화된 옛 기억을 믿은 탓일까. 아이의 초예민함과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다섯을 낳을 거라는 나의 헛된 꿈은 저만치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아이아빠와 나, 모두 여유가 생겼을 때 그때가 시작이었다. 한 번은 받아들였다.

‘그래, 누구나 실수는 하지. 실수였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에둘러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위한 다짐이었다. 하지만 곧 그것이야말로 나의 실수임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받아들여지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 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습관.”

그때 난 오히려 냉정하고 차가웠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생각하고 정리했다. 살아가는 것은 현실이니까. 아이와 함께 지내려면 감정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일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차분하게 정리하던, 때로는 숨죽여 울기도 하고, 다시 생각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던 시간, 그 시간이 동영상으로 매일 되풀이된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 동영상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지금도 아이의 이마를 만지며 그 시간으로 돌아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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