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인맥 관리, 직장인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인맥이 있어야 일이 술술 풀린다.
-관계자와 술자리 한 번 가지면 안 되던 일도 쉽게 진행된다.
-인맥이 강한 사람이 직장에서 잘 승진하고 오래간다.
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위의 말들을 참 많이 들어왔다.
특히나 한국에서 인맥 관리는 술자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하수구 막힐 때 쓰는 뚫어펑 마냥 술이 있으면 막혔던 통로가 뚫리는 효과를 본다는 신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팀장 이상 관리자들은 특히나 이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팀원들과 회식 안하는 것에 대해 큰 부담감을 느낀다. 정작 팀원들 대다수는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팀장은 회식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회식하자고 외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인맥 관리, 꼭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술자리 없이는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인맥 관리에 참 약하다. 여럿이 어울려서 대화하고 같이 놀러다니고 이런걸 잘 못한다. 혼자 여행다니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성격이 모난 것은 아닌데(라고 혼자 생각한다) 같이 있을 때 말도 신경 써야하고 늘 실수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ADHD 특성 상 그 자리가 불편한게 큰 원인인 것 같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혼자 교회 다니며 조용히 한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느니라' 이 성경 말씀을 알면서도 도저히 공동체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같이 무엇을 하는게 참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회식 자리 쫓아다닌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정까지 2차, 3차로 이어지는 회식은 내 적성이 아니었다. 이게 맞춘다고 맞춰지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생활 만족도는 점점 더 내려가기만 했다.
술을 꼭 마셔야만 인맥이 형성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과연 인맥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었다. 이직하고 나면 만들어 놓은 인맥은 다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퇴임한 부사장 조차 집에서 할 일이 없다고, 그렇게 자주 회식했던 부하들도 만남은 커녕 연락 한 번 없다고 매일 푸념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맥처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싶었다. 부질없는 일에 내가 그동안 신경써온게 아닌건지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다룬 책들이 많았다. 인맥을 잘 맺어야 직장에서 생산되는 고급 정보를 잘 취득하게 되며, 밀고 당기는 힘 덕분에 쑥쑥 승진하게 된다는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내 부캐를 만드는 법,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다. 유튜브에는 굳이 인맥에 집착하지 말고 미리미리 제 2의 인생에 대해 준비하라는 영상이 많다. 시대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임원 승진이나 팀장 진급에 집착하지 않는다. 팀장으로 임명되고도 싫다고 거부하는 사례도 실제로 여러번 보았다. 일에 파묻혀서 자기 시간 없이 회사에 종속된 삶을 사는것이 싫은 것이다. 직장에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워래밸이 강조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중시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맥은 여전히 중요하다. 승진을 떠나서 회사에서 원활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일은 대부분 여럿이 같이 하게 된다. 다른 부서와 앞뒤로 연결된 일들도 많다. 이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인사권이나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인사팀, 재무팀, 기획팀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다만 술에 의존하는 인맥은 버리자. 내 몸 버리고 내 자유시간 버려가면서까지 인맥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게 내 체질에 맞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굳이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맥은 자연스럽게 형성해 나가자. 이 블로그에 쓰여 있는 수많은 방법들 중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내용들만 잘해도 인맥은 저절로 형성될 수 있다.
- 어떤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
- 즉시 감사하기
- 감사 표시할 때 빠뜨리는 사람 없도록 주의하기
- 커피 같은 소소한 먹을 것을 같이 챙기면 효과가 두 배가 됨
- 인어공주처럼 남몰래 조용히 도와주면 아무도 안 알아줌
- 반대로 너무 생색내면 도와주고도 욕 먹음
- 상대방은 도움이 필요 없는데 멋대로 판단해서 도와주지 말기
-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기
- 절대 거짓말 하지 않기
- 상대방 감정이 가라 앉았을 때 사과하기. 너무 빨리, 너무 늦게 하지말기
- 내가 뭘 잘못했는지 분명하게 말하기
- 앞으로 어떻게 조심할건지 계획을 밝히기
- 상대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아두기
-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게 훨신 더 중요함
- 많이 말하기보다 많이 들어주기, 조언과 충고는 선 넘지 않기
-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꼭 덕담 건네기
이 정도만 잘해도 굳이 술 마시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인맥을 만들 수 있다.
나 역시 인맥관리가 회사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회식자리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꺠달은 것은... 술로 맺어진 관계는 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이직을 하게 되면 이전에 부지런히 술로 도원결의 맺은 것은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몸만 망가지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술 마시면서 인맥 만들 생각하지 말고,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라. 술로 만든 인맥도 일을 잘 하는 사람한테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지, 일 못하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짓이다. 0에다가 아무리 큰 수를 곱해도 답은 0이 되듯이...
진정한 인맥관리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인맥관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