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내가 어렸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백화점에 신발을 사러 간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할머니 연세가 많으시니 신기 편하신 신발을 사드리려고 했다. 할머니는 아무 신발이나 괜찮다고 하셔서 기능성 신발을 골라드렸다.
그런데 할머니가 꽂힌 신발이 있으셨나보다. 하얀색 굽 없는 구두였는데 좀처럼 그 구두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 구두를 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의 표정이 할머니 얼굴에 나타났다.
그 날 그 구두를 사드렸다. 가격이 제법 비쌌던 구두였던걸로 기억한다. 그 구두를 샀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시던 할머니 얼굴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하다.
내 기분을 좀처럼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속상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불쾌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난 네게 거짓말을 못하지, 아닌척을 해도 늘 들키지~"
전람회의 노래 '우리'의 가사이다. 바로 표정에 드러나는 사람이다. 정말 순수한 사람이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내 주변에 있다면 우정이 변치 않았으면 하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다르다.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덕목으로 보기 어렵다. '장님으로 삼 년, 귀머거리로 삼 년, 벙어리로 삼 년' 을 버텨야 하는게 직장인 것이다. 싫어도 티 안내고 최대한 표정을 감추는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집살이와 같은 곳이 직장인 것이다.
야구에서 투수는 표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홈런을 맞고난 이후에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불안해하고 흔들리면 팀 전체에 그 악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래서 포커페이스가 투수의 덕목이다.
직장인도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라는 점에서 투수와 다르지 않다. 상사에게 깨지고 난 뒤에도, 내가 맡기 싫은 일을 맡았을 때에도 그 기분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안되는 것이다. 기쁠 때 기뻐하는건 뭐가 문제되겠는가? 그러나 싫을 때 온몸으로 그 싫음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된다. "나 일하기 싫어요!" 를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툭하면 심판에게 불평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있다. 플레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심판을 붙잡고 늘어진다. 이런 선수들은 심판의 눈 밖에 나게된다. 미운 털이 박혀 불리한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웃고 긍정적인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지, 늘 불평불만이 얼굴에 가득차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경우 팀장 눈 밖에 나게 되고 중요 업무에서 배제된다. 필요 이상으로 불리한 판정을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만 직장상사가 주는 그 떡은 '맴매' 즉 몽둥이로 맞는 것이다.
이쯤되면 궁금해질 것이다. "아니! 표정이 무슨 속옷도 아니고 내 맘대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게 맘대로 되냐?" 물론 맞는 말이다. 표정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랜기간 내 생각과 내 감정에 따라 특정 표정을 자주 짓게 되고 얼굴 근육이 그 표정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걸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표정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분명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악의 모습은 "괜찮아요!", "좋아요!" 이렇게 입으로는 말하면서 싫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진짜로 좋은게 맞는걸까? 물어본 사람은 혼란스럽게 된다.
차라리 솔직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자. 만약에 팀장이 "이번주 금요일에 단체 회식 어때? 다들 찬성하지?" 물어봤다고 하자. 하나 둘씩 찬성한다고 대답한다. 나는 이리 저리 눈치를 본다. 회식도 싫은데 심지어 금요일이다. 최악이다. 그런데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똥 씹은 표정으로 "저도 찬성입니다"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솔직하게 이렇게 대답하자.
오랜만의 팀 회식!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주 금요일은 다른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안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되세요!
혼자서 집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것도 중요한 일정이다. 거짓말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덕담까지 건넸으니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여기에서 주절주절 핑계대면 오히려 역효과이다. 딱 이 정도에서 끝내자. 1) 상대방 의견에 공감 + 2) 안되는 이유 + 3) 덕담 이 정도면 된다.
싫을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말고, 위 프로세스에 따라 말하면 된다.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 짓느라 얼굴에 경련 일으키지 말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하자.
예전에 후배 직원 중에 이런 직원이 있었다. 한 번 삐지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직원이었다. 말로는 "괜찮아요" 이러면서 뭘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간신히 대답한다는 말이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였다. 나중에는 나도 말 걸기가 싫어 그냥 삐지던 말던 내버려뒀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화가 나고 삐지게 된다. 그 표정은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싫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헷갈리게 된다. 싫은데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추천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싫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 낫다.
다만 전략적으로 지혜롭게 말하자. 싫은걸 액면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하수다. 일단 상대방 의견에 공감하면서 그럼에도 내가 싫은 이유를 말하자. 그리고 덕담까지 건네면 좋다. 길게 말하려고 하지 말고 이 세가지만 기억하고 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