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학창 시절에 근대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에 대해 공부한 일이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두 세 줄 정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원만한 사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사건은 잘 보여주고 있다.
때는 1885년, 당시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게 진출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진행되었다. 극동 지방이었던 조선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 간에도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러시아의 오랜 꿈은 부동항, 즉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동남아시아 쪽으로 진출하고 싶어했다. 자신들의 식민지가 위협받는 것을 경계한 영국은 그런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기를 쓰고 막아내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충돌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당시 함경도에 있는 영흥만 지역을 러시아에 빌려주는 대가로 러시아의 도움을 얻어내기로 밀약이 진행되고 있었다. 드디어 러시아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밀약은 들통나게 되었다. 조정 내의 청나라에 우호적인 세력이 이를 청나라에 흘렸고, 청나라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영국은 러시아가 내려오는 것을 막고자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남해안에 있는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 1887년에 러시아가 조선 항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영국은 2년 간의 거문도 점령을 끝내고 철수하게 되었다.
조선은 외국과 교류하지 않던 폐쇄적인 국가였다. 19세기에 수많은 외국 배들이(이양선이라고 불렀다) 거래를 요구하며 방문했지만 조정에서는 늘 거부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조선의 폐쇄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 해군과 2년 간 사이좋게 지냈다. 그들은 낯선 영국인들과 친했고 젊은 사람들 중에는 빠르게 영어를 익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렇게 섬 주민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영국 해군이 어떻게 해서 주민들과 잘 지낼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우리도 회사에서 낯선 사람, 낯선 환경과 수시로 마주치고는 한다. 이 때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영국군은 주민들과의 접촉을 철저하게 제한했다. 자칫 대민마찰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해외 주둔 경험을 통해 현지인들과의 마찰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정해진 시기에 사전에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 그리고 주민들의 문화를 존중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도 함부로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었다.
처음 거문도에 상륙했을 때, 좀처럼 씻으려고 하지 않고 집 안 곳곳에 귀신을 쫓는다고 부적을 붙여놓는 주민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한다. 다만 위생 상의 문제가 있으니 접촉은 최대한 자제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 해군 규모는 200~300명 정도였다. 소규모였던 이들은 숙소나 막사를 짓는데 주민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절대 강제로 협박하여 짓게 하지 않고 근대식 거래관계로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거문도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라고 있었다. 농사지을 땅은 충분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어업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나마 벌어들이는 수입은 지방 토호들이 착취해갔다.
영국 해군은 자기들 관할권 내에 있는 거문도에 토호들이 세금을 거두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은 쉬는 조건으로 고용하며 당시 조선의 화폐인 상평통보와 함께 곡식, 설탕, 술 등의 현물을 급여로 지급하였다. 목장에서 근무하면서 급여를 받기도 하였고, 토지를 빌려준 사람은 그 댓가로 사용료를 받기도 하였다.
조선의 관리들, 양반들은 그저 수탈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 낯선 사람들은 급여도 계산해서 철저하게 지급했다. 그리고 쉬는 날도 있었다. 당시 거문도 주민들은 '선데이' 라는 단어를 쉬는 날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주민들을 괴롭히던 한 해군이 있었다고 한다. 술에 취해 마을로 들어가 행패를 부렸던 것이다. 이 해군은 체포되어 사령관으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배에서 밀어서 바다로 떨어지면 죽을 힘을 다해 수영해서 땅으로 기어 올라와야 했다. 그러면 또 배로 끌고 올라가서 다시 밀어버렸다. 이걸 반복한 것이다. 주민들은 이걸 보면서 영국 해군은 규율이 엄격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섬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섬에 미신이 만연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의학의 도움을 받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해군 군의관들은 아픈 사람이 생기면 마을로 찾아가 치료해주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섬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자연히 섬 주민들에게 있어 영국 해군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이들에게 받는 통조림과 궐련은 당시 주민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궐련의 경우는 성인 남자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섬 주민과 영국 해군 간에 로맨스도 있었다. 과부가 된 젊은 여자를 해군 한 명이 위로해주고 챙겨줬었던 것 같다. 자연히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 해군 복무 규율 상 주둔지 주민과의 결혼은 금기시되었다. 여자의 재가에 부정적이던 유교사상도 발목을 잡았다. 아쉽게 둘 간의 로맨스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우호적인지 아는 방법은 그 집을 공개할 수 있는지 아닌지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는 목사님이 설교 때 말씀하셨는데 정말 신앙이 깊은 분들은 기꺼이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오픈하신다고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국군은 막사 중 편의시설을 주민들에게 오픈했다. 테니스장, 당구장이 구비되어 있었고, 주민들은 이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었다. 당시 주민들 중에는 당구에 상당한 소질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람은 쭉 한 회사를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이직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직하는 경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다시 인맥을 만들어야 하고 회사 시스템에도 다시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회사라는 공간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측량하고 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며 그 섬을 익숙한 곳으로 만들었듯이, 일단 내가 있는 곳이 익숙해져야 한다.
다른 층도 가보고 회사 복지시설이 있다면 들어가보자. 회사 주변 카페나 식당도 가보면서 회사 주변을 익숙하게 만드는게 필요하다. 사람은 일단 편안해야 생각이 정리되고 차분해진다.
거문도 주민들은 지방 토호들의 오랜 착취로 인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한계로 인해 문화혜택이나 의료지원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다. 영국 해군들은 이것을 알고 주민들에게 맞춤형 편의를 제공하였다.
팀 구성원 중에서 잦은 야근과 까탈스러운 상사의 핍박에 괴로워하는 직원이 있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 사람 일을 도와주자. 가끔 커피나 밥도 사주면서 격려해주자.
일단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챙겨주는 것도 좋지만,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는 것이 훨신 더 중요하다. 특히 내가 말한 것을 건성으로 듣고 놓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신뢰가 깨지게 된다.
처음 일이 주어지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기대했던 일과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 상사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 팀에서 내가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줘야 한다.
영국은 거문도에 상륙한 이후, 주민들 대상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이 곳 어디에 주둔하고, 앞으로 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고 싶고 급여는 어떻게 지급하고 이렇게 사전에 이해를 구하였다. 주민들은 낯선 이들이 점령군이 아님을 깨닫고 마음을 열게 되었다.
미리 나에 대해 알아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상호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영국이 19세기 당시 제국주의 깡패 국가였음을 생각하며, 거문도에서도 강압적으로 주민들을 억압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 해군과 주민들과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영국이 계속 여기에 머물러주기를 원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허구한 날 뜯어가기만 했던 조선 조정과 지방 양반 세력들 보다는 합리적인 면이 있던 영국군이 훨신 좋았던 것이다.
1960년대에 정부기관에서 그 때까지 생존해있던 80대, 90대 주민들에게 당시 일을 물어봤다고 한다. 노인이 된 그들은 영국군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고, 당시 아이였을 때 배웠던 영어노래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 해군이 잘 정착했던 이유는 그들이 낯선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지리에 익숙해지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자. 내가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내 계획은 무엇인지 미리 알려주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