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바꾸기가 실패하는 이유
많은 회사들이 조직문화 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조직문화팀을 만들고 정시 퇴근 캠페인, 1시간 이상 회의 금지, 회식은 밤 9시까지만 하는 119 캠페인 등 많은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도는 도입되어도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회사 전반에 이미 뿌리내린 시스템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임원에게는 별도의 방과 비서가 있고, 전용 주차 자리도 있다. 모든 의사결정은 팀장-상무-전무로 수직으로 올라간다. 이런 부분은 놔두고 몇 개 지엽적인 것만 바꾼다고 해서 조직문화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예 밑바닥부터 다 뜯어 고쳐야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한국의 신분제도를 통해 조직문화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인도 카스트 제도는 현재에도 인도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신분제도는 지금 흔적 조차 찾기 어렵다. 이 둘의 차이가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둘의 차이에서 조직문화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자.
신분제도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이다. 사실 카스트라는 말은 인도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최초로 인도에 식민지를 건설한 포르투갈인들이 카스타(Casta)라고 칭하면서 전 세계에 카스트 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라고 부르지 않고, 바르나(Varna)라고 부른다. 브라만(사제) - 크샤트리아(왕족) - 바이샤(서민) - 수드라(노예)로 바르나가 구분된다.
물론 하나의 바르나 안에는 무수히 많은 신분들이 또 다시 나뉘어진다. 이를 자티(Jati)라고 하며, 각 자티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제한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가촉 천민이다. 이들은 전체 인도 인구의 1/5을 차지한다. 14억 인구의 20퍼센트이니 무려 2.8억명인 것이다. 최근에도 불가촉 천민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다른 신분의 아이를 때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그 아버지의 손을 절단해서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인도 정부는 1950년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폐지했다. 실제로 인도 대도시에서는 카스트 제도의 영향력이 많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골의 경우 여전히 공권력이 잘 미치지 않고 지방 호족들의 힘이 강한게 인도이다. 이 곳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인도는 IT 강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혜택을 보는 것은 대부분 브라만 계급 출신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 구글의 CEO 순다이 파차이는 모두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작년까지 영국의 총리였던 인도계 영국인 리시 수낙도 브라만 출신이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정치, 경제계 고위직은 브라만에게 절대적으로 많이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불가촉 천민이 인도에서 가장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불가촉 천민보다도 더 낮은 계급이 존재한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불가시 천민' 이다. 말 그대로 눈에 띄여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온 몸을 천으로 가리고 몸에 방울을 달고 다닌다. 지나갈 때 나를 쳐다보면 안된다고 알리는 것이다. 불가촉 천민들도 이 사람들은 무시한다고 한다. 끝도 없이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가촉 천민들 외에도 카스트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들은 밑바닥에 위치한다. 무슬림들, 동북 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은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된 채 이들은 절대 빈곤 속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인도 정부에서 카스트 제도를 없앤지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왜 카스트 제도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고위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야 자기들이 누리는 혜택을 뺏기기 싫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힐랄 네루는 브라만 출신임에도 신분제 폐지를 앞장서서 외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국부로 추앙받는가 보다)
문제는 노예 계급인 수드라나 불가촉 천민들 조차도 신분제도 폐지에 그다지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에서도 암베드카르 등 많은 인권운동가들이 신분제 폐지를 위해 나섰다. 그러나 하위 신분 사람들의 호응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힌두교에서는 그 생애에 자기 신분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다음 생애에서는 더 높은 신분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윤회사상이 있기에 죽으면 계속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고달픔을 잊는 아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 생애에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그걸 막으려는 신분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이 씨알도 먹히기 힘든 이유이다. 그렇게 카스트 제도는 오늘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한 의뢰인이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고문서를 들고 온 적이 있었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 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노비문서였다고 한다. 명문가였다고 생각했던 의뢰인이 느꼈을 충격과 공포가 어땠을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명문가 출신 아닌 사람은 없다. 다들 자기 가문은 양반가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 전기까지 양반층의 비율은 2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양반 - 상놈 - 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사회에서, 천민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는 백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소설 임꺽정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이들은 가축을 도축하거나 지푸라기로 짚신, 바구니 등을 만들었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극심했다. 이들은 일반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같이 살 수 없고 따로 모여 살아야만 했다. 이들은 패랭이라고 불리는 모자를 써야만 했고 갓을 쓸 수 없었다. 윗 신분의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상대방이 어린 아이라도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해야만 했다.
백정들은 사실 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들이었다. 19세기 말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백정들의 체형은 일반 조선인들보다 훨신 컸고 수염이 많고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조선 사회가 상당히 거부감을 갖고 차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백정에 대한 차별도 그 즉시 사라지게 되었을까?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백정에 대한 차별은 일제 강점기 때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백정들은 잘 끼워주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해방 이후에도 차별은 여전했다. 육군 사관학교에 백정 출신 생도가 입학하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백정과 같이 한 장소에서 훈련 받을 수 없다고 반발하는 생도들이 많았다. 결국 그 생도는 반강제로 사관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참 신기하게도 지금은 대한민국에 신분제의 잔재는 전혀 느낄 수 없다. 해방 이후에도 극심하던 신분제의 잔재가 어떻게 싹 없어지게 되었을까?
정답은 바로 6.25 전쟁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았다. 지주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 개혁 때 토지를 팔고 현금으로 분배받았다. 문제는 전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현금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한 번에 몰락해버리고 말았다.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공장을 차리거나 학교 법인을 세운 소수의 지주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수 많은 사람이 죽고 집을 떠나는 와중에 누가 어떤 신분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전쟁 때 공을 세우면 과거 신분이 무엇이였던 간에 높은 자리에 중용되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전쟁 때 큰 돈을 번 사람 중에는 백정들도 많았다. 도축업은 당시에 큰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당시 잘 사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도 공급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었다. 백정들의 주 수입원이 도축업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쓰나미로 모든 집이 다 떠내려가듯이, 이렇게 신분제는 전쟁 때 다 쓸려나가 없어지게 되었다. 사회가 완전히 파괴되고 뒤집어지면서 비로소 신분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게 되면 혼란이 초래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의 철도 시스템이다.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은 좌측 통행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국 방식대로 우측 통행으로 바뀌게 되었다.
문제는 철도였다. 도로는 운행 방향을 바꾸는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철도는 다르다. 선로가 좌측 통행에 맞게 이미 다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걸 다 새로 깔지 않고서는 우측통행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경부선, 호남선 등 해방 이전에 건설된 철도는 여전히 좌측 통행으로 운행된다. 도저히 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철도는 현재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 뒤섞여 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의 경우 남태령까지는 우측 통행을 하다가 선바위로 넘어가는 순간 좌측 통행으로 바뀐다. 기존의 안산 방향 철도는 좌측 통행 방식, 새로 만든 4호선은 우측 통행 방식이라 둘을 연결하려면 통행 방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꽈배기 터널을 만드는데 수 백억원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안 들어가도 되는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잔재를 그냥 놔둔 채 일부만 바꾸는 것은 후유증이 매우 크다.
조직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완전히 새로운 조직문화로 탈바꿈 시키려면 회사의 결재 방식, 직급 체계, 사무실 배치 등을 싹 다 바꾸어야 한다.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몇 개 제도만 손보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그래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지하철 4호선처럼 지속적으로 비효율이 나타나게 되고 계속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전쟁 때 나라가 완전히 뒤집어 진 것처럼 그 정도의 지축을 뒤흔드는 정도의 충격이 있어야 비로소 기존 제도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뒤바뀐다. 인도는 그 정도의 충격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의 유일한 순기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직문화를 개혁하고 싶다면 회사를 완전히 다 뜯어고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한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탑티어 회사들의 제도 일부를 도입한다는 생각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이 개혁이 왜 필요한지 구성원들을 충분히 이해시켜야만 한다.
조직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경우,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왜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한국의 신분제도는 어떻게 해서 완전하게 사라질 수 있었는지 생각하고 접근하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