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에게 대처하기
차 대리는 늘 웃는 얼굴이다. 누가 옆에서 아무리 짖궂은 장난을 쳐도 "허허" 하고 웃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차 대리는 학창시절에도 종종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말이 어눌하고 감정 표현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몇 개는 빠진듯한 그는 만만한 사람으로 자주 취급받고는 했다.
직장에 들어온 이후, 그의 시련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늘 친절하고 잘 웃는 그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호구 취급하는 못된 동료들도 있었다. 은근슬쩍 힘든 일, 잘해봐야 본전인 업무들을 그에게 떠넘기고는 했다.
작년에 새로 팀장이 된 이 팀장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일을 잘해서 회사 돈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이 팀장은 사실 팀원들을 기름 짜내듯이 착취해서 그걸로 성과를 내는 인간이었다. 차 대리는 업무 이해 속도가 느리고 잔실수가 많은 편이었다.
처음에는 이 팀장이 차대리를 엄청 챙겨 주는 것만 같았다. 나만 믿으면 돼! 회사에서 인정받는 내가 방패가 되어줄께! 이 팀장의 이 말에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차 대리가 이 팀장을 믿고 의지하자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실수만 하면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너는 싹수가 노랗다고 인격모독성 말을 마구 쏟아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기가 죽은 차 대리는 평소에도 귀신에 홀린듯이 벌벌 떨고 있었고 실수는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당연히 혼나고 무시당하는 일을 더 늘어나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아무나 타겟으로 삼지 않는다. 내가 괴롭혀도 찍소리 내기 힘들고,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들은 나보다 힘 센 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을 구별하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 구별기준은 내가 더 높은 자리로 뻗어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혹시 내가 나르시시스트 직장 상사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절대 그들의 타겟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의 타겟이 되는 사람들은 그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들을 에코이스트(Echoist)라고 한다. 이 에코이스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2) 웃는 표정을 자주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3) 고맙습니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늘 자주 한다.
4) 다른 사람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5) 주목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6)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7)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남에게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8) 주변 상황이 나쁘게 흐르면, 이게 나 때문은 아닌지 생각한다.
내가 위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에코이스트임이 분명하다.
에코이스트 특징을 가진 사람은 인기가 많다. 같이 있으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에코이스트들은 힘들 때가 많다.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하고, 싫은 소리는 더더욱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진수성찬과도 같다. 내가 괴롭혀도 별 저항을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석의 N극이 S극만 보면 저절로 달라붙듯이, 이들도 자연스럽게 달라 붙는다.
단순히 에코이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다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에코이스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에 더하여 뭔가 행동이 어색하거나, 말투가 어눌한 사람, 푼수 같은 이미지로 눈 밖에 난 사람 등등..조직에서 뭔가 겉도는 듯한 사람들은 곧바로 먹이감이 된다.
이들은 대체로 좋은 업무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빠릿빠릿하고 잔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들은 이걸 잘 못한다. 그저 사람은 좋지만 업무능력은 부족한 사람이다.
일단 괴롭힘을 당해도 이걸 남에게 잘 털어놓지 못한다. 조리있게 말하는 법을 잘 모르다보니 팀원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팀원들에게 내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때려도 그저 맞기만 할 뿐, 반격을 하지 못하니 나르시시스트 상사는 이제 신이 난다. 자기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잽싸게 권투 글러브부터 찾는다. 그리고 희생양을 불러서 신나게 샌드백 때리듯이 두들겨 댄다. 그리고 너를 위해서, 너 잘되라고, 정신 차리라고 이러는 거라고 세뇌시킨다. 즉 가스라이팅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뭔가 켕기는게 있는지 내가 아니면 너 챙겨줄 사람 없다고, 너도 다치지 말고 나도 안 다치려면 입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즉 착하고 순수하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 잘 못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뒤쳐지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나는 직장에 일하러 온 것이지, 감정 쓰레기통이 되려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 상사는 나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샌드백으로 취급한다.
나는 그저 잘 웃고, 잘 공감하고, 내 생각 잘 안 드러내면서 주변에 맞춰주려는 것 뿐인데..그런 선한 의도를 이용해먹는 야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업무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게 된다. 당장 이 사람이 부르기만 해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데, 그 사람의 지시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겠는가? 내 머리 속은 이미 그 사람과 같이 있는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으로만 가득한다. 사자 앞에서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없듯이..
그렇게 나는 일도 더 못하게 되고 회사에서는 점점 소외되어간다.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점점 썩어간다. 이러다가 칼부림 같은 큰 사고라도 칠까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