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내가 신입사원 때의 일이다. 첫 직장은 거제도에 있는, 선박을 만드는 모 중공업 회사였다. 거제도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지역이었다. 그 지역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 그래야 회사에서 일하기 더 좋을 것만 같았다. 주말마다 거제도에 있는 산과 강으로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거제도에는 '계룡산'이라고 하는 (무속인들이 많이 사는 충청도 계룡산과 이름이 같다) 산이 있다. 혼자서 부지런히 그 산을 올라갔다. 당시는 9월 초라 여전히 더울 때였다. 해발 566미터인 산 정상까지 갔다가 하산했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산 정상 바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폰을 그 바위 위에 둔 기억이 난 것이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기를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냥 폰을 새로 사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부지런히 구시렁대며 마침내 또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위 위에 폰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허망한 마음에 물이나 마시려고 가방을 열었다. 별안간 내 스마트폰이 가방 속에서 보였다. 빠꼼히 '나 여기 있어요' 손짓하고 있어요. 그럼 나는 왜 산에 다시 올라온 거지? 폰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허탈함이 같이 밀려 올라왔다.
혹시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인가? 유난히 자기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방이며 폰이며 지갑이며 잃어버린 물건이 한 보따리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일에 정신이 팔린 경우 사람은 그 일 외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 회의 시간에 늦어 정신없이 회의실에 들어갔던 경우, 알고 보니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다이어리를 두고 온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회의 참석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이다.
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경우 이처럼 물건을 어디에 내가 두고 왔는지, 제대로 챙겼는지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것이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곳에나 놓는 습관은 물건을 잃어버릴 확률을 높인다. 정작 그 물건이 필요할 때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물건 찾아 삼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건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기가 어려워 잃어버렸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기억력을 감퇴시킨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물건을 둔 장소를 잊거나, 중요한 물건을 실수로 버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람은 스트레스에 빠진 경우,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다른 일에 신경 쓰기 어려운 것이다.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해변에 있는 사람이 당장 내 차가 어디 주차되었는지 고민하기 어렵다. 그 위기상황을 탈출하는데 온 마음과 생각이 다 집중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경우 유난히 물건을 잃어버릴 때가 많은 이유이다.
물건을 보관할 장소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거나, 여러 장소에 분산해서 보관하면 나중에 찾기 어려워진다. 이때는 마치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나중에 찾고 보면 뜬금없는 장소에서 발견되고는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필요할 때 제 때 그 물건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과거 자료를 찾아야 하거나 이전 보고자료를 리더에게 드려야 하는데 그 자료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제공해 드릴 수가 없다. 제 타이밍에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된 자료를 주면서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무용품을 잃어버린 경우라면. 또다시 구입해야 하고 이는 비용의 낭비를 초래한다. 물건을 다시 사는 것도, 그 비용을 처리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업무에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도 버릇이다. 평생 폰 잃어버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년에 한 번씩은 연례행사 처렁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택시나 지하철, 심지어 나처럼 산 꼭대기에다 놓고 오는 사람도 있다. 아래와 같은 방법을 통해 잃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항상 같은 자리에 물건을 두는 습관을 들이면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사무실 개인 서랍장은 보통 아래 사진처럼 3단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맨 위에는 사무용품들 즉, 스테이플러, 딱풀, 개인 약품, USB, 포스트잇 등 부피가 작고 언제든 쉽게 꺼내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업무를 했더라도 물건만큼은 꼭 제자리에 두자.
그 아래 서랍은 컴퓨터 관련 용품을 두는 것이 좋다. 마우스나 랜선, 충전기 등이 있다. 그 외 개인 용품 중 부피가 큰 것들, 로션이나 헤어 왁스, 치약, 칫솔, 비누를 두는 것도 괜찮다.
맨 아래 서랍에는 중요 문서를 두는 것이다.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라벨링을 하자. 리더십 교육, 신입사원 교육, IT교육 이렇게 구분해서 서류를 보관하면 필요할 때 찾기가 쉬워진다.
사용한 물건은 즉시 제자리에 두어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게 귀찮다고 방치하게 되면 정리해야 된다는 생각은 점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사용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
사용한 물품은 바로 제 자리에 정리하자. 그래야 공용물품 마냥 많은 사람들이 쓰다가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된다.
물건을 둔 장소가 어디인지 메모하는 습관은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게 한다. 자주 쓰는 익숙한 물건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샀거나 남에게 빌린 물건은 일단 낯설기도 하고 생김새도 익숙하지 않기에 자칫 잊어버리기 쉽다.
중요한 물건은 스마트폰에 위치를 저장하자. 그러면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저장강박증'이라는 것이 있다. 물건을 쌓아두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질환으로, 가끔 뉴스에서도 접할 수 있다. 계속 집 안에 쌓아두기만 하고 버리지를 않으니 집 안에 악취가 들끓게 된다.
정리정돈도 마찬가지이다. 물건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서랍장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게 된다. 어떤 경우는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난 초코바나 과자가 서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딱 10분만 내서 한 달에 한 번씩 정리정돈을 하자. 책상 위나 서랍장 정리하는데 10분이면 된다. 그렇게 한 번 정리정돈을 하면 물건이 있는 위치도 한 번 확인할 수 있고 물건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꼭 필요한 물건만 보관하면 정리 정돈이 쉬워지고 물건을 잃어버릴 확률도 낮아진다. 이건 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갖 물건을 다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담하건대 그 물건 1년 안에 쓸 가능성은 10퍼센트 미만이다.
물건이 많아지면 찾기도 힘들고 당연히 잃어버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전 할머니들이 머리카락도 서랍장에 보관했던 것처럼 온갖 물건들 마구 쌓아놓지 말자.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것도 미덕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물건을 쓰다 보면 없어지기 마련이다. 중,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자. 다른 반에서 축구공을 빌려가면 머지않아 그 공은 없어진다. 찾으려고 해도 "나 그 공 돌려줬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다.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돌려줬다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물건을 빌려줄 때는 꼭 장부를 작성하게 하자. 언제, 누가 빌려갔는지 쓰도록 하는 것이다. 반납했을 경우는 반납한 사람 이름을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책임지고 반납하게 된다.
예전에 어떤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아기를 잃어버려서 울고 불며 찾아다니다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갑자기 울음소리가 나서 뒤를 보니 아기가 등 뒤의 포대기 속에 들어있더란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람이 당황하면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등잔 밑이 어둡듯 자기 주변을 찾을 생각을 못 하게 된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것은 건망증 때문도 아니고 기억력이 나빠서도 아니다. 정리하는 습관이 부족하고, 물건을 관리하는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항상 물건을 두는 위치를 정해놓자. 그리고 사용한 물건은 바로바로 정리하자.
당연히 물건 관리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일에 능하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것은 이런 물건 관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징검다리 돌을 하나씩 정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적으로 개울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은 물건 정리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