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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나에게 그 꽃다발 주지 마요..

꽃은 너무 예쁘지만요

by silvergenuine

다가오는 4월에 늦둥이 셋째가 태어난다.

진달래, 벚꽃, 조팝나무꽃, 영산홍 봄꽃이 만발할 4월을 떠올리며 '꽃봄'이라 태명을 지어주었다. 꽃도 봄도 좋아하기에 꽃봄이라 이름 부르니 더없이 좋다. 꽃봄, 우리 꽃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누가 애쓰지 않아도 해마다 저 알아서 피는 꽃들이다.

우리 엄마는 마당에 만발하는 매화를 보고

"올해 꽃이 많이 왔네, 떠난 사람도 해마다 이렇게 찾아와 주면 얼마나 좋겠노."

하시며 떠난 이를 그리듯 꽃을 반기셨다.


우리 나라 꽃나무들은 엄동설한을 견뎌내며 가만히 있는 듯, 사실은 그동안 충분히 살찌워낸 꽃눈들을 봄바람에 내놓아준다. 필 때도 저 알아서, 꽃잎을 떨굴 때도 저 알아서 흩어진다.

수선화, 무스쿠리, 꽃무릇, 국화 같이 땅 속에서 겨울을 나는 여러해살이 꽃들도 저 알아서 다녀가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온갖 풀꽃들도 꽃씨에서 자라나 꽃씨를 남기고 가니 참 홀가분하다.


나를 둘러싼 꽃들이 나의 마당에 피어난 꽃들이면 좋으련만, 도심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차선책은 화분에 심긴 꽃들이다. 사실 1층에 살고 있어서 우리집 베란다 밖에 내가 심은 수선화,국화,꽃무릇이 해마다 찾아와주지만,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것 같은 꽃들이라 아파트 조경 관리 때마다 함부로 치일 때가 많다.


졸업과 입학 시즌을 맞아 꽃시장이 분주하다.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담은 화려한 꽃다발이 사람들 사이에 오간다.

얼마전 학생들을 졸업시킨 남편이 너무나 아름다운 꽃다발을 품 안 가득 받아왔다. 요즘 꽃다발 값이 엄청 비싼데, 돈 주고는 못 샀을 터이다.


꽃병에 꽃을 꽂기 위해 포장지를 제거하려니 겹겹이 싸인 포장지가 엄청나다. 꽃집 사장님과 친분이 있다면 재사용하실 수 있게 갖다드리고 싶은데, 아는 데가 없어서 용기를 낼 수가 없다.


사실, 난 꽃다발을 안 좋아한다.

버려지는 포장이 싫고, 꽃이 시든 후에 버리는 과정도 싫어서다.

대학 졸업식 때도 부모님께 꽃다발말고 꽃화분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오래오래 가꾸겠다고. (무색하게도 나의 과잉 수분공급으로 일찍 죽어버렸다)

이런 내 성질을 아는 남편은 꽃다발을 살 일이 없다. 가끔 마트나 화원에서 내 맘을 잡아끄는 소박한 꽃화분이나 관엽식물들을 사달라고 부탁하면 기꺼이 선물해주는 내 편이다.


서양에서는 졸업이나 입학, 기념일 선물용이 아닌

자신을 위한 꽃을 사는 문화가 흔하다고 한다. 꽃집에서 이 꽃 저 꽃 골라 신문지에 대충 싸주는 대로 들고 와 아끼는 꽃병에 꽃을 꽂으면 그 뿐이다. 꽃을 사는 것이지 포장을 사는게 아니기에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 꽃문화라면 나도 뿌리가 없는 꽃이라도 한번씩 사들고 와 며칠 간의 화사함을 누릴 의향이 있다.

하지만 포장이 너무 고급스러운, 주고 받는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꽃다발은 거북스럽다.


좀 가볍고 산뜻한, 소박한 꽃, 거창한 날이 아닌 일상에서 함께 하는 꽃을 바라는 꽃봄 엄마. 꽃다발을 마다하는 여자라니, 좀 별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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