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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2)

엄마와 아기가 함께 가는 길

by silvergenuine

지금 돌아보니 그건 가스라이팅이었다.

산후도우미는 본인이 경험도 많고 우리에게 오기 직전에도 3주 정도 신생아를 돌보다가 왔다고 했다. 신생아도 처음이고 산후도우미도 처음 겪어보는 우리 부부에게 그 분의 방식이 그대로 가이드 라인이 되었다.

내 모유를 먹고 난 아기가 바로 안 자고 칭얼거리는 걸 보더니

젖이 모자라서 그래요, 분유를 먹여요.”

“아기가 자꾸 빨아줘야 젖이 늘어난데요, 더 오래 물려볼게요.”

해봤자 안 되는 산모는 안 돼, 보아하니 가슴이 젖량이 많은 가슴이 아니야, 괜히 아기 고생시키지 마세요.”

“그래도 모유 먹이고 싶어요, 분유는 송아지에게 맞는 영양분이라 모유랑 다르대요.”

참나, 그래도 아기가 배를 곯으면 안 되지. 내가 저번에 봤던 산모는 젖이 남아서 아기가 먹고도 남아서 남은 젖은 짜서 버리던데, 그 집 아기는 엄마 모유를 실컷 먹어서 엄청 커, 얘랑은 비교도 안 돼, 그 엄마에게 말해줄테니 남는 젖 얻어다 먹여볼래요?”

집에서 내 젖으로 아기를 키우겠다던 내 호기는 오그라들고,

내가 젖량이 적은 엄마면서 직수를 고집하면 아기를 배고프게 하는 나쁜 엄마가 되니

아기 몸무게를 쑥쑥 늘려준다는 그 엄마의 모유를 얻어다 먹이기로 상황이 흘러갔다.

그 때부터 남편은 퇴근길에 그 집에 들러 젖동양을 해왔다.

내가 직수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나면 냉동된 그 어머니의 모유로 보충을 해줬다.

아기가 먹는 양이 늘어나니 보충량이 늘어났고 아기가 많이 먹는 만큼 내 젖이 그만큼 모자란 것이라며 그 산후도우미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아기가 잘 때 서비스라며 내 가슴 마사지를 해줬는데 손아귀힘이 우악스러웠다. 유선을 따라 밀어올리면서 모유가 한 방울씩 밀려나올 때마다 이렇게 하면 점점 젖이 늘 거라며 자신의 마사지 기술을 자랑했다. 밀려나온 모유만큼 내 눈물도 나올 만큼 아팠지만, 원래 그런 거라 생각하며 참아냈다.

그러던 며칠 뒤, 우리 젖동냥 이야기에 기가 막혔던 시어머니께서 아이통곡이라는 마사지를 받으면 젖량이 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직접 예약해줄테니 꼭 거기 가서 가슴마사지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 오는 산후도우미가 가슴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며 사양했지만, 어머님의 거듭된 권유에 산후도우미가 오지 않는 주말에 잠시 어머님께 아기를 맡기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젖마사지는 당연히 아픈 건 줄 알았는데, 그 곳 마사지사의 손길은 찰떡마냥 부드러웠고 고통 하나 없이 젖이 분수처럼 솟아나왔다.

분수처럼 솟는 모유를 얼굴에 한 번씩 속절없이 맞아야 하신 그 분의 얼굴 피부는 광택이 났다.

수많은 산모들의 모유 덕분에 이 분은 피부가 진짜 좋으시구나! 퇴근길엔 젖비린내는 좀 나겠지만, 부럽다. 나도 아이통곡 취업하고 싶다.’

누워서 드는 생각이 생뚱맞다.

저희 산후도우미가 제가 젖량이 적어서 완모는 안 된대요.”

“원래 젖이 적은 사람은 없어요, 제가 보니 산모님 젖량은 절대 적은 게 아니에요, 이 정도면 한 쪽에 80밀리는 충분히 넘는데 그동안 제대로 빨아내주지를 못한 것 같네요. 그리고 엄마 젖량은 아기가 먹는 것에 맞춰져서 더 늘어날 거에요.”

그 분의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희망이 되었다.

월요일이 되어 그 산후도우미가 다시 출근했고 나에게 가슴 마사지를 또 해주었다.

나는 가슴마사지를 받으며 순진하게도 주말에 아이통곡 마사지를 받았던 이야기를 하며 내 젖량이 적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 산후도우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내가 마사지를 해주는데, 거길 왜 갔대요?”

저도 안 가도 된다고 했지만 시어머니께서 꼭 좀 가보라 하셔서 가봤는데 젖이 퐁퐁 나오는 거 보고 정말 신기하긴 하더라구요.”

뭐, 그럼 난 이제 마사지 안해줘도 되겠네요.”

하며 마사지를 그만 두더니, 그 뒤로 며칠 남은 기간 동안 매우 불친절한 모드로 근무했다.

저, 미역국에 미역이 너무 커서 먹기가 힘들어요, 끓일 때 좀 잘라주시면 좋겠어요.”

허, 네. (싹뚝싹뚝 자르더니) 이제 됐죠?”

(여전히 너무 컸지만) 네, 좀 낫네요.”

내가 방에서 아기와 함께 있으면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소파에 누워있었고,

아기 기저귀 갈 때가 되어도 내가 부탁하지 않으면 갈아주지 않아서 그냥 내가 하곤 했다.

처음이라 그런 도우미를 그냥 견뎠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어찌나 심했던지 그 분이 2주의 근무를 마치고 떠나시던 날, 너무 홀가분하고 해방감까지 느꼈다.

이제 혼자서 어떻게든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보였던 남편이 다른 산후도우미분을 1주일만 불러주었다. 두려웠지만, 그냥 차려주시는 밥이나 먹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새로 오신 도우미분은 이전 도우미와 180도 달랐다.

내가 모유 먹이는 모습을 보며

아유, 아기가 정말 잘 먹네요. 기특해라.”

완모하고 싶은데, 전에 계시던 분이 제가 젖이 적어서 안 될 거래요. 지금 이거 먹고 나면 냉동실에 있는 젖으로 보충 좀 해주세요.”

“너무 걱정 말아요, 아기가 먹는 만큼 늘어날 거에요. 저도 우리 두 아이 다 완모해서 키웠어요. 산모님도 할 수 있어요.”

라며 격려하고 다독여주셨다.

그 분이 계신 일주일 동안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고, 모유수유에 대한 자신감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 그 분이 가시고 나 혼자 아기를 돌본지 일주일쯤 되던 때부터 보충 수유 없이 진정한 직수완모가 시작되었다. 삼신할머니께 감사드렸다.

아기는 포동포동 살이 올랐고 미쉐린 같은 손목팔목을 자랑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첫 아기 14개월의 모유 수유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듬해말 둘째 출산.

2박 3일 출산 입원을 마치고 조리원 없이 바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 출산 후 나흘째 되던 날 아침 젖이 딱딱하게 차오르는 걸 느꼈다.

첫 째 때 겪었던 고난의 모유수유 여정이 다시 시작되나 두려워하면서 잠에서 깬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배고팠던 아기가 힘차게 젖을 빨아먹어주었고, 뭉쳤던 젖이 말랑말랑하게 풀렸다.

그대로 직수완모 직행이었다.

그 후로도 크게 젖몸살도 없었고 기미가 있어도 아기가 잘 먹어주면 금세 나아졌다. 몸무게는 돌 전에 계속 상위 95%를 유지하며 젖량부족에 대한 기존의 나의 염려를 싹 날려주었다.


산모가 불안감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유 생성도 어렵고 원활한 배출도 어렵다고 한다.

첫 산후도우미는 날더러 모유량이 원래 적은 사람이라 하고, 한번은 내가 젖몸살 때문에 양배추잎을 가슴에 대고 있었다고 했더니 이제 젖량이 줄기만 할테니 완모는 어림없다고 단언을 했었다. 그런 말들에 나는 자신감을 잃었고 그 때문에 수유가 어려웠던 것이다.


혼자라면 결국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산모와 아가를 믿어주신 두번째 도우미님 덕분에 완모가 가능했고, 그 분을 우리의 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유수유를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이는 자궁수축을 유도하기 때문에 빠른 산후 몸회복에 도움이 된다. 모유 수유를 할 때마다 오로가 많이 배출되고 뼈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또한 옥시토신은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는 호르몬이라 아기와 엄마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고 아이가 이후 삶을 살아가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몸무게도 한 달 만에 임신 전으로 돌아왔었다.

흔히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을 보면

"내 살 좀 가져가라"

농담을 하는데, 이 말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것이 모유수유인 것 같다.

수유 전 가슴이 차고 배도 나와있다가 아기가 힘차게 젖을 빨 때 내 몸에서 젖이 흘러나가는 걸 느끼고 나면 매번 배도 다시 쑥 들어가있곤 했다. 돌까지 아기 몸무게가 느는 만큼 내 몸무게는 줄어들었다. 모유수유를 끊자 몸무게가 다시 2킬로 정도 늘긴 했지만.


지나간 육아에서 모유수유가 가장 그리웠었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10년만에 찾아온 늦둥이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다시 가지려한다.

모유수유를 신봉하는 출산드라가 되어 셋째 역시 모유로 포동포동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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