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과 모유수유와의 상관관계
첫 아이를 출산한지 사흘째, 산후조리원에 오니 유축하는 방법부터 가르쳐주었다.
유축기를 작동시키니 정말 내 몸에서 초유가 흘러나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쉬라고 있는 산후조리원에서 밤낮 없이 3시간마다 알람에 맞춰 유축을 하다보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유축기를 밀착시켜 잡는 것도 힘에 부쳐 남편이 옆에서 붙잡아주기도 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며 초유를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압력을 높여가며 끝까지 짜내다보니 피부가 갈라지고 너무 아파 눈물도 함께 짜내야 했다.
나흘째 되는 날은 가슴이 딱딱하게 뭉쳐서 조리원에서 무료로 제공된다는 가슴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마사지사께서 내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사지사: "엄마 젖을 배출하는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유축기, 손으로 짜내기, 아기가 직접 빠는 것 중에 무슨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나: "유축기가 제일 잘 되니까 조리원에서 유축기로 모유 짜는 거 아니에요? 아기가 아직 빠는 힘이 약해서 유축기 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유축기, 아기가 빨기, 손으로 짜내기 순으로 잘 나올 것 같아요."
마사지사: "아니에요, 1위가 아기가 직접 젖을 빨아 먹는 것, 2위가 손으로 짜내는 것, 3위가 유축기 사용이에요."
나: "헉, 근데 병원이랑 조리원에서는 왜 아기가 직접 빨게 하지 않고 유축기로 짜서 먹이라고 하는 거에요?"
마사지사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조리원에서는 산모를 쉬게 하는 게 우선이고, 초반에 산모의 젖이 충분하지 않아 아가들이 배고파서 잘 자지 못하고 몸무게가 줄어들 수 있어서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먹이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젖이 계속 뭉칠 수 있으니 가슴 마사지를 추가로 받으려면 마사지n회권을 결제하라고 하셨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조리원에서 직수(직접 수유)를 우선하지 않고 유축기 사용에 대해서만 살뜰하게 알려주기에 나는 유축기가 젖을 빼내는 데 1등 방법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직수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니!
나뿐 아니라 많은 산모들이 유축기로 젖을 짜내고 다 배출하지 못한 젖 때문에 젖몸살을 겪고 있단 말인가, 젖몸살이 오기 전에 아기가 충분히 빨아먹으면 이럴 일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조리원에서는 직수완모를 돕지 않고 유축하라고 하지?
아기가 직접 엄마젖을 빨아먹어야 하는데, 왜 미리 분유를 배불리 먹여놓아 모유를 빨아먹을 이유가 없게 만드는 거지? 이것은 마시지 장사? 분유 장사?
선량한 마사지사님의 영업기밀 유출로 나는 조리원의 수유 시스템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조리원에서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정해진 모유수유 시간에 직수 연습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엄마젖이 차오르는 시간과 아기가 먹고 싶은 시간을 서로 맞추지 못하니 아기는 모유 직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엄마는 아기가 못 먹은 모유를 유축으로 빼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모유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니 유방에 남은 젖만큼 생성될 젖량이 줄어들게 된다.
조리원에서 분유부터 먹이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추리해봤다.
1. 분유는 소화시간이 오래 걸려 포만감이 오래 유지되므로 아기가 더 오래 잔다.
2. 첫 주 아기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 원래 출산 후 첫 주는 엄마 젖량이 맞춰져가는 기간이라 모유 수유만으로는 아기 몸무게가 다소 줄어드는 게 정상인데, 이를 산모들은 잘 모르기에 아기 몸무게가 줄면 불안을 느끼게 된다. 분유를 넉넉히 먹여 아기 몸무게가 늘어나니 민원의 소지가 적다.
3. 분유회사와의 커넥션: 조리원에 올 때 챙겨오라는 준비물 중에 아기가 먹을 분유를 사오라는 경우는 없다. 부모의 선택권 없이 병원에서 지정한 신생아 분유를 먹이고 퇴소할 때 남은 분유를 챙겨준다. 그 분유가 어디서 났을까? 짐작컨대, 분유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병원이 돈 들여서 샀을 리가 없다고 짐작한다. 아니면 선정과 구입의 형식절차를 갖춰 리베이트를 받았을 수도 있다.
아기가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분유를 잘 먹는다면 조리원 퇴소 후 집에 와서도 그 분유 그대로 먹이게 될 가능성이 높고, 자람에 따라 같은 회사의 분유를 단계별로 바꿔가며 먹이게 되겠지. 분유회사로써는 1단계 1통만 제공하면 줄줄이 구매가 이어지는 것이기에 남는 투자가 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조리원 분유회사'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3년 전 뉴스가 떴다. 한 회사 이름만 공개해 놓았는데, 다른 분유업체들의 불법 영업혐의도 포착하고 조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댓글을 보니, 벌금 몇 억보다 영업 이익이 훨씬 크기에 이런 커넥션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또 프리미엄이라고 하는 분유와 일반 분유가 영양상 큰 차이가 없음에도 처음에 프리미엄 분유를 먹이게 되면 부모 마음에 더 싼 분유로 옮겨가기가 쉽지 않다고도 했다.
젖병수유와 모유직수를 병행하면 아기에게 유두 혼동이 오게 되고, 젖병으로 먹는 것이 직수보다 빠는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아기들은 모유 빠는 힘을 충분히 기를 수가 없다. 이런 과정에서 엄마의 젖량은 점점 줄게 되고 모유는 엄마와의 애착 형성 수단 정도로 여겨지다가 어느새 단유의 길로 가게 된다.
조리원의 시스템에 휩쓸려 모유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은 몸대로 힘드니 어서 아기와 집에 가고 싶기만 했다. 그래도 계약한 기간만큼은 있어야하는 줄 알고 버티려 했는데, 남편이 문의해본 결과, 얼마든지 나가도 되고 남은 날짜만큼 환불도 해준다고 하여 바로 퇴소를 결정했다. 속이 시원했다.
(막상 조리원에 와보니 뭐가 잘 맞지 않아 힘이 드는데, 계약 때문에 버틴다는 산모들 얘기도 많이 보았다. 환불 규정은 조리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조리원이 맞지 않다면 억지로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리원을 이틀 만에 박차고 집에 오니 아기와 계속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병원 2박, 조리원 2박을 거쳐 출생 5일 째 되던 날부터 아기와 온전히 함께 있게 된 것이다.
젖 마사지 때 들었던 대로 직수로 완모하며 아기를 키우리라 마음 먹었다.
집에 온 이틀 동안 아기가 직수로 모유만 먹고 잘 잤고 2시간마다 기쁜 마음으로 모유수유를 했다. 알람이 없어도 아기의 기척에 눈이 떠지고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아기와 집에 온지 사흘 째 되던 남편의 출산 휴가 마지막날, 남편은 혼자 아기를 돌볼 나를 위해 산후도우미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이 산후도우미로 인해 나에겐 새로운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