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댁은 점점 농사일에 지쳐만 갔다.
몸은 나이를 못 견디고 자꾸 아픈 데만 생기고
이 상태로는 농사를 짓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에다 일을 잘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주저앉아 버리고
아무리 바쁜 농사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영희 아빠를
도저히 믿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촌댁은 고민이 많아졌다.
영희 아빠한테 여기 논밭을 팔고 영희가 있는
인천으로 올라가자고 살짝 운을 떼어봤다.
영희아빠는 무슨 소리냐고, 시골사람이 어떻게
도시 가서 살 수 있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인천에 살고 있는 성(언니), 형부도 있으니까
곁에 가서 살면 못 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또 영희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일촌댁은 급기야 논밭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몇 십 년을 내 집 드나들 듯 오갔던 정든 논밭을
싹 다 팔아 버리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은
오히려 더 편해졌다.
시골 논밭이라야 제대로 된 가격도 못 받고
손에 쥔 돈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든든하게 일촌댁네를 지켜주었던 논밭은
하루아침에 남의 집으로 팔려 나갔다.
일촌댁은 더럭 겁이 나고 떨려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괜한 짓을 했나 보다고 자책하며 다시 땅문서를
돌려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골에서 쓰던 낡은 세간살이들은 다 정리하고
단출한 이삿짐을 꾸려서 인천으로 올라왔다.
일촌댁은 영희에게도 아직 얘기를 못했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영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일촌댁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일촌댁은 낯선 도시환경이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다.
거리도 낯설고 사람들도 낯설었다.
오직 가까운 성(언니)네 집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도시 거리를 훔쳐보며 하나씩 익혀 나갔다.
시골 농사짓느라 고생한 허리는
시도 때도 없이 끊어질 듯이 아프다.
특히, 날궂이 하는 날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도시 사람들은 허리 수술도 한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수술하다 잘못될까 봐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인천에 올라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영희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손자가 보고 싶어서
일촌댁은 영희네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영희는 직장을 다녔다.
주말이면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놀아주었다. 어찌나 빨리 달아나버리던지
허리 아파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일촌댁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영희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놓고
중도금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일촌댁은 마음이 아팠다.
제대로 도움도 줄 수 없어서 영희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파트로
입주해야 된다고 영희는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아파트로 이사 가면 엄마랑 같이 살자고
영희는 얘기했었다.
그렇게 얘기해 주는 영희가 고마웠지만,
일촌댁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촌댁은 갑자기 배가 아프고 설사를 했다.
뭘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다녀왔어도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다 풀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서울에 살고 있는 큰 딸이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는데도 영 기운이 없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급기야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잠깐 의식을 잃고 깨어나보니 영희가
울고 있다. 정신은 또렷해진 것 같아서
영희에게 말을 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양서방이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
영희는 일촌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귀만 가져다 댄다.
일촌댁은 숨이 턱까지 차오름을 느꼈다.
영희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입도 뻥끗할 수가 없었다.
영희를 놔두고 떠나가기 싫은데 자꾸만 숨이 가빠진다.
일촌댁은 큰 숨을 몰아 쉰다. 이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다음 이야기는 제10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