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증빙 자료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항목도 많았고, 포맷도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 품목, 원래 성진테크 말고 다른 업체에서 구매하던 거 아니에요?”
“계약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데, 왜 성진테크에서 산 걸로 정산됐죠?”
게다가 어떤 항목은 증빙도 없이 금액만 적혀 있었다.
그런 항목이 몇 달 치나 반복되어 있었다.
“1년 치 정산 내역, 전부 뽑아주세요.”
우리는 지난 인터뷰 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협력사 대표에게 다시 연락했다.
확실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는 정산 자료를 조용히 훑어본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이런 방식으로 성진테크 장 대표와 최 과장님이 돈을 만들었군요.
성진테크에서는 이 품목을 취급하지 않아요.
이건 제가 확실히 압니다.”
퍼즐 조각이 명확히 맞춰졌다.
성진테크는 애초에 이 품목을 취급하지 않는 업체였다.
그런데도 매달 그 품목이 그 회사를 통해 꾸준히 정산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당사자인 두 사람을 직접 만나 확인할 차례였다.
김 부장, 신입사원, 그리고 나는 성진테크 사무실 근처의 조용한 스터디카페를 미리 예약했다.
노트북에는 문제의 정산 내역을 띄웠고, 핵심 항목은 따로 출력해 파일로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전략은, 두 사람에게 대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인터뷰 시간을 연달아 배치해, 정보를 공유할 틈을 차단했다.
예상 가능한 질문들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최근 술자리 접대나 근태 관련해서 특별한 이슈는 없었습니까?”
장 대표와 최 과장은 미리 준비된 듯, 편안한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갔다.
긴장을 풀었다는 신호였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렸다.
김 부장은 노트북을 돌려 1년 치 정산 내역을 보여줬다.
의심스러운 항목에는 모두 노란색 음영을 넣어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그 항목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물었다.
순간, 장 대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김 부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까?
정산은 제가 직접 하는 게 아닙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나는 차분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장 대표님, 협조하지 않으시면 비윤리 업체로 분류되고,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협조해 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말을 덧붙였다.
“정산 내역은 제가 잘 모릅니다.
엑셀도 잘 못하고요...
이건 우리 직원과 최 과장님이 하는 일이라,
제가 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바로 이어진 최 과장과의 인터뷰는 조금 달랐다.
그는 초반부터 신중하고 침착했다.
하지만 정산 내역을 보자, 눈빛이 흔들렸다.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길어진 침묵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직접 처리한 건 아니고…
사무실로 돌아가 파견직원이나 장 대표님께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좋습니다. 정산 자료는 바로 보내드릴 테니,
3일 내로 근거 회신 주세요.”
다음 날 아침,
나는 실장님께 인터뷰 결과를 정리해 보고 드렸다.
실장님은 자료를 넘기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거…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전체 내역 다시 봐야 합니다.
회사가 실제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부터 확인해 봅시다.”
이제는 샘플이 아닌, 전수조사를 해야 할 때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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