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조사 3일간의 기록
“어떻게, 좀 진척이 있나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김 부장과 신입사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김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준이 없다 보니… 계약에 없는 내용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계약서 항목을 기준으로 하고, 항목에 없는 품목은 다른 협력사 정산 자료를 참고해서 단가표를 만들죠.
그 기준으로 성진테크 정산 내역을 적용해 수량과 금액 차이를 계산해야 합니다.”
이번 작업은 최소 3년 치 전수조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4~5년 차는 샘플링으로 추가 검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었다.
김 부장은 경험도 많고, 숫자에 밝은 사람이라 진행이 잘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느렸다. 기준을 정해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엑셀 보는 것도 이제는 힘드네요..." 김 부장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저도 이제 나이도 있고.. 실무에서 손 뗀 지 좀 돼서 그런가 봅니다. 일이 확대되니까, 오히려 저희가 더 힘들어진 느낌이에요.”
신입사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크지 않았다.
엑셀 기본도 미숙했고, 숫자를 읽는 감각도 부족했다.
하, 결국 내가 다 해야 하나... 나는 실장님께 중간보고를 드렸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실장님은 바로 말씀하셨다. “대표님께서 이 건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계십니다. 속도를 내시고, 늦어도 차주 초까지는 보고해야 합니다.”
기한이 정해졌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떠오른 얼굴 하나. 재무팀의 김 대리. 엑셀 실력자이자, 평소 믿음직한 후배였다.
나는 곧장 그를 만나러 갔다.
“지금 우리 팀 상황이 이런데, 정산 내역을 기준별로 정리해야 해. 네가 보기엔 이 일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김 대리는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일주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맡은 일이 있어서요... 저희 팀장님이 다른 업무 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그 길로 재무팀장을 찾았다.
“팀장님, 저희 이슈 건 아시죠? 팀 자체적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김 대리의 지원을 요청드리려고 합니다. 조금 전에 김대리와도 잠시 이야기 나누었어요.”
재무팀장은 고민스러운 얼굴이었다. “김 대리도 지금 일이 꽤 있을 텐데... 어떻게 하죠?”
나는 간절하게 말했다. “일주일만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일주일은 어렵고, 2~3일 지원할게요. 신 팀장 부탁이라 특별히 도와드리는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나는 곧바로 김 대리에게 엑셀 자료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회의실을 잡았다. 김 부장, 나, 그리고 재무팀 김 대리. 셋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김 부장이 지난 일주일간 정리한 내용을 간단히 공유하고, 우리는 다시 기준을 재정비한 뒤 3년 치 협력사 정산 내역을 비교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작업은 오래 걸렸다. 밤 9시,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모두 지쳐 있었다.
다음 날은 저녁 10시, 이틀 연속 야근이었다.
마지막 날 나는 외부 미팅 등 일정을 모두 비우고 이 일에만 매달렸다. 오후 5시면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은 저녁 7시가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김 부장님 그리고 김 대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커피 쿠폰을 보내며 말했다.
“정말 모두 고생 많아요... 조금만 더 힘냅시다.”
그리고 밤 11시가 좀 넘어 마침내 마무리됐다. 4~5년 차 정산 내역은 샘플링으로 검토했고,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성진테크에 과대 정산된 금액이 드디어 정확히 드러났다. 그 액수는 2억 5천만 원이었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감사팀의 일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은 부족하며 마감은 여유 없이 다가온다.
이것이, 감사팀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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