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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업무!

혼자 끙끙 앓기보다, 털어놓기

by 정작가

혼자 끙끙 앓기보단, 털어놓기로 했다.
두 부장님과, 그리고 실장님과.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달라질 수 없으니까.


우선, 이숙자 부장부터.

"부장님, 모닝 커피 하러 가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였다. 오랜만에 둘만의 티타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 게 꽤 오랜만이었다.

"요즘 좀 어떠세요?" 내가 묻자 부장님은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항상 힘들죠... 이젠 나이가 있어서 그런가,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고... 업무도 잘 모르겠고... 팀 분위기도 뭐 제가 말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숙자 부장은 회사에서 25년 넘게 재직한 베테랑이었다. 당시 이른 나이에 취업해 자금팀과 재무팀을 두루 거친 재무 전문가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주도적인 업무보다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고, 이번에 감사팀으로 이동하면서 새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실 부장님은 요즘 종종 지각을 했다. 이전 팀에서도 성과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평판이 엇갈리던 분이었고, 나 역시 처음부터 그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상반기에 다양한 교육 기회를 드렸고,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하반기에는 부장님의 희망대로 업무를 부수적으로 배치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맡기며, 조금은 숨 쉴 공간을 드리고 싶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7일 오전 12_10_35.png

그런데 그날 커피를 마시던 중, 부장님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사실... 회사에서 명예퇴직 같은 프로그램을 열어준다면, 나 그냥 나가고 싶어요."

말끝은 담담했지만,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말씀, 제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정식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이 부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꼭 검토해주세요."

회사도, 팀도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 부장님 역시 이 팀에 오고 나서 '조용한 이탈'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출퇴근이 힘든 분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팀에는 더 에너지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날 오후, 김 부장님과도 따로 티타임을 가졌다.

"부장님, 조만간 소주 한잔 해야 하는데요~"

그는 피식 웃더니 짧게 대답했다.

"네, 좋지요."

나는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심으로 허심탄회하게 부장님과 둘이 소주 한잔 하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실장님을 찾아갔다. 업무 보고를 간단히 마친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장님, 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재무팀에서 이동하신 두 분 부장님이 우리 팀에서… 솔직히 말해 부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팀의 에너지와 분위기가 모두 나빠지고 있습니다."

사실 실장님이 그 두 분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셨다. 실장님께서 내가 직책을 맡은 후 강조했던 키워드는 변화·속도·책임감이었다. 기존에 부족했던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 내가 선임되었고, 지금은 그 변화가 더딘 상황이었다.

실장님은 조용히 내 말을 들으셨다.

"팀장님,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나는 바로 이숙자 부장 이야기를 꺼냈다.

"이숙자 부장이 명예퇴직을 희망합니다. 공식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검토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본인이 희망한다고 하니, 가장 최근의 명퇴 조건을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몇 시간 후 연락이 왔다. 조건은 월급 18개월치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부장님과 마주 앉았다.

"부장님, 명퇴 조건을 알아봤습니다. 회사에서는 올해 정식 명퇴 프로그램이 없지만, 부장님의 경우 특별히 과거 기준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준은 연봉의 1.5에요."

부장님은 어제와 표정이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적은데... 일단 집에 가서 상의 좀 해보고 생각해볼게요."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 부장은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조건도 생각보다 좋지 않고요. 사실 어젯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냥 없던 일로 하려고요.
생각해보니, 그만둔다 해도 딱히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냥… 계속 다닐래요."

나는 조건을 조금 더 좋게 요구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미 보고까지 한 상황에서 조금 난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다시 실장님을 찾았다.

"실장님, 이숙자 부장은 명퇴를 원치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두 분이 함께 있는 건 팀 문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실장님께서는 다른 팀에서도 두 분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과, 이숙자 부장이 명퇴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팀장인 내가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 실장님도 여러 방안을 알아보고 노력하신 것은 분명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두 분 중 한 분의 이동이 어렵다면, 저희 팀에 한 명을 추가로 충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장님은 물으셨다.

"혹시 팀장님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본인도 저희 팀으로 이동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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