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배우는 일과 사람에 대한 태도
일요일, 연재 날짜를 놓친 이유는,
마음이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복잡했고, 정리가 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었다.
정해진 목차가 있었고, 연재 날짜도 다가왔지만 맥북을 열지 못한 채 주말을 그냥 보내고 말았다.
월요일에 팀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고, 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생각하기로 다짐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한 권의 매거진이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콘셉트에 맞게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
인터뷰를 진행하는 카피라이터.
인터뷰 장면을 영상으로 담는 비디오 에디터.
각 섹션에 글을 쓰는 작가들과 그 글을 점검하는 최종 교정자
그리고, 작가들에게 받은 글에 맞는 사진을 고르고, 폰트와 컬러를 정하며, 페이지마다 다르게 레이아웃을 구성하는
디자이너.
이 모든 과정을 조율하고
잡지 전체를 하나의 콘셉트로 이끄는 사람은 편집장이다.
그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항상 마지막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지적받는 사람은 디자이너이다.
오타가 나도, 컬러가 틀려도, 인쇄 전 문제가 발생해도 디자이너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그건 한국이나 캐나다나 똑같은 현실이다.
이번 5월, 6월호 매거진을 준비하면서 우리 메인 매거진 팀은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이너가 힘들었다.
편집장과 감정이 깊게 쌓였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오너에게서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리포트카드를 제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1. Was the error missed by the proofreaders? If so, was it present in the Word document or the PDF?
2. Was the error introduced internally during the design stage? If so, at what specific point in the process did it occur?
3. What steps can we implement to prevent similar errors in the future?
We need to look into this and use this information to improve our process and ensure we grow from these mistakes and continue to strive to produce work that is a reflection of everyone's dedication and care and hard work.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사람의 실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오너가 바라보는 시각은 직원의 입장과는 달랐다.
우리 팀원은 실수를 감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불편했고, 질책을 듣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부적으로 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프로세스 오류가 발생한 시점과, 그것이 내부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유사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어떤 단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직원과 회사는 입장이 다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인쇄가 나오기 전 마지막 교정 단계에서 잘잘못을 따져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오너에게 받은 메일에 답장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장과 팀원, 아트디렉터와 함께 월요일 아침에 회의를 하자는 답장을 또 받게 되었다.
매듭지어지지 않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상황 속에서 무거운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11시에 미팅이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 팀원은 다시 한번 회의에 대한 간단한 의견을 나누었고, 몇 가지 제안할 대안도 준비해 두었다.
11시, 미팅룸에 도착한 편집장은 굳은 얼굴로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 옆에 앉은 아트디렉터는 얕은 미소만 보였다.
“자, 시작해 봐.”
편집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피라이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 오탈자가 많았던 이유와, 캐나다식 스펠링과 미국식 스펠링 차이를 교정자가 발견하지 못한 점에 대한 문제.
2. 작가들의 Word 문서를 교정자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
3. 교정자의 지속적인 글 수정으로 인해 디자이너들이 겪은 고충,
4.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복사와 붙여 넣기를 반복하다 생긴 사고.
이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얼어붙은 침묵을 깬 사람은 아트디렉터였다.
“아티스트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 위에 다른 아티스트가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며 덧칠을 한다면, 그 그림이 정말 좋아질까? 처음 작가가 의도한 글이 있었고, 그에 맞게 글을 완성했는데, 교정자가 전면적으로 수정을 한다면 그 글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다. 여러 번 수정이 반복되면, 오탈자나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한마디에 나도 모를 안도감이 흘렀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회의 분위기는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를 조금만 이해하고, 조금만 배려하면 감정적 소모 없이 더 좋은 방향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듯한 오너의 태도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정신을 며칠이고 무겁게 만들었던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지만, 이런 과정을 조금 더 부드럽게, 서로에게 상처 없이 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서로를 격려하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정리해 보니,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앞으로 나도, 좀 더 신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부분이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정확히는, 마무리가 되었다기보단 잠시 멈춘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내 역할을 다했을까. 팀을 위한, 회사를 위한, 나 자신을 위한..
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씩 지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 내가 캐나다에서 배우고 있는 ‘직장인의 삶’이라는 걸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야겠다.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