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고구마와 양배추입니다.
PSS가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두부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반찬투정을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밥을 안 먹는다고 간식을 주면 안 된다.' '개는 며칠 굶어도 괜찮다.' '밥시간에 맞춰서 주고 안 먹으면 치워버려야 한다.'와 같은 보통 강아지들이 밥을 안 먹을 때 쓰는 훈육 방식에 따라 식사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아파서 식욕이 없던 것이었다니...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수의사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수술 전까지 밥은 어떻게 줘야 해야 하나요?"
"아무거나 주셔도 괜찮습니다."
마침 두부가 밥을 너무 안 먹어서 생식이나 화식을 해볼 요량으로 준비해 두었던 고기들이 집에 조금 있었다.
"혹시 닭고기나 생선 같은 것도 괜찮을까요?"
"네~ 좋아하는 거 다 주셔도 괜찮습니다."
맛있는 고기를 잔뜩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가며 바쁘게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빨리 가서 두부 가자미 구워줘야겠다."
내 말을 들은 짝꿍의 표정이 이상했다. 생각해 보니 병원에서부터 잠깐이긴 했지만 뭔가 갸우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원래 해독 못하는 환자들한테는 단백질 많이 주면 안 되거든... 강아지는 다른가? 사람은 잘못하면 혼수 와서 심하면 의식 잃고 발작할 수도 있는데.."
"개는 다른가 보지 아무거나 줘도 된다고 했잖아"
전직 ICU(중환자실) 간호사의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분명히 아무거나 좋아하는 거 다 줘도 된다고 말했고 콕찝어 생선이나 닭고기도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도 괜찮다고 했으니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달가슴살을 삶아서 잘게 찢은 후 닭 육수와 섞어서 줬다. 사료를 주면 한숨만 쉬던 두부는 닭고기는 환장을 하고 먹었다. 저녁으로는 가자미를 구워 갈아서 줬다. 이것 역시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개한테 고기를 줬으니 잘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밥을 시원하게 먹은 적이 없던 강아지가 밥을 잘 먹는 걸 본 나는 두부가 벌써 수술이 잘 끝나서 정상이 된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그날 밤 두부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픈 것도 모르고 그동안 밥 안 먹는다고 구박한 게 미안해서 오래간만에 거실에서 다 같이 자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두부가 평소보다 침을 많이 흘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물을 먹었나?' 생각했는데 물그릇에 물은 그대로였다. 그리곤 거실을 빙빙 돌다가 다시 나에게로 와서 철퍼덕! 다시 빙빙 돌다 철푸덕!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걸음걸이도 약간씩 비틀거리는 게 정상이 아닌 듯 보였다.
"여보 두부가 쫌 이상한데. 침을 왜 이렇게 많이 흘리지?"
짝꿍이 두부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 이러다 발작할 거 같은데 빨리 병원 가야겠다!!"
시간은 12시가 넘어서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울이야 집밖으로 나가면 24시간 동물병원이 널려있겠지만 우리 집은 '모슬포'였고 이 동네는 10시만 넘어도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 1시 이후엔 편의점도 모두 문을 닫을 정도니 이 시간에 동물병원을 가려면 무조건 서귀포나 제주시로 가야 했다.
일단 두부를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옆자리에 짝꿍은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영업하는 제주시 동물병원을 찾아서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분명 24시라고 적혀있는데 왜 전화기는 24시간 켜두질 않는 건가.. 다른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여보세요 oo동물병원입니다"
" 저희 강아지가 pss가 있는데요 지금 간성혼수로 침을 많이 흘리고 의식을 잃을 것 같아서요. 응급실로 가려고 하는데 지금 가도 괜찮을까요?"
"진단받으신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긴 24시간 영업을 안 하는데요."
"저희 병원에서 치료받던 강아지가 아니면 어려운데요.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낮에 갔던 병원이 새벽 1시까지 한다면 내가 왜 다른 병원에 전화를 한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제주시에 24시간 영업하는 동물병원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전화를 안 받거나 오지 말라고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서귀포에 있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이 있는건 아니였지만 24시간 진료 가능하다고 공지되어있는 병원이었다. 사실 거리상으론 서귀포가 더 가깝긴 했지만 서귀포에 사는 사람들도 병원은 제주시로 다니곤 한다. 사람 병원도 그런데 동물 병원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더 먼 제주시에 먼저 연락을 해봤던 것이었다.
"여보세요 '정든 동물병원'입니다."
" 저희 강아지가 pss가 있는데요. 간성혼수로 침을 많이 흘리고 의식을 잃을 것 같아서요. 지금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제가 지금 병원이 아니라 다시 병원으로 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한데요. 얼마나 걸리시죠?"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서귀포 신시가지에 위치한 '정든 동물병원'에서 전화를 받아주셨고 이미 퇴근한 지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우리 사정을 듣고 다시 나와서 두부를 봐주신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 두부는 수액을 맞으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조금만 늦었으면 두부는 간성혼수로 의식을 일을 뻔했지만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한 덕분에 위험한 순간은 넘겼다고 하셨다.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본인이 아침까지 지켜보고 있을 테니 집에 가보셔도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긴장이 풀렸는지 돌아오자마자 둘 다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두부는 잘 회복 중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두부를 데리러 갔고 그렇게 두부의 여러 번의 무지개다리 투어 중 첫 번째 투어는 다행히도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끝이 났다.
여담이지만 '정든 동물병원'은 당시 큰 상가건물 1층 한켠에 위치한 동네 애견 미용실보다도 작은 규모의 아주 작은 동물병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신 선생님이 계신 덕분인지 지금은 이전보다 규모가 훨씬 커져서 전용 주차장까지 딸린 대로변의 단독 건물로 확장이전을 했다.
그 뒤로 두부는 단백질이 제한된 처방식 사료만 먹기 시작했고 간식은 일절 금지, 꼭 먹어야 한다면 무, 양배추, 상추, 브로콜리, 고구마, 바나나, 사과 같은 야채나 과일만 먹었다. 듣도보도 못한 '비건(Vegan)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두부가 가장 오래 복용하고 있는 약 '락툴로오즈'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변비 또는 간성혼수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대장에서 분해되어 대장 내 산성도와 삼투압을 높임으로써 혈중 암모니아 농도를 낮추어 간성혼수 치료에 이용된다. 또한, 높아진 삼투압에 의해 장내 수분을 증가시켜 배변을 촉진하기 때문에 변비 치료에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락툴로오즈 (약학용어사전)
그렇게 채식하는 '비(ve) 견(犬)'으로 며칠을 지내고 ct촬영을 하기 위해서 제주대학교 동물병원에 갔다. 사람과 다르게 강아지는 촬영하는 동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고 촬영을 해야 한다. 정상적인 강아지 같은 경우는 이 정도 마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두부처럼 간이 좋지 못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신마취를 위해서 두부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촬영 전까지 처방식 사료 외에는 일절 주지 않았고 락툴로오즈도 빠트리지 않고 잘 챙겨 먹였다. 촬영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두부는 무사히 깨어났고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간내성인 거 같은데요."
"아..."
"저희 병원에선 수술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시는 게.."
"네.."
PSS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문제가 되는 비정상 혈관이 간 안쪽에 있는 '간내성', 간 바깥쪽에 있는 '간외성'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간외성은 문제 혈관을 찾기도 쉽고 찾은 혈관을 막아줄 때 그 혈관이 두껍더라도 천천히 막아줄 수 있는 장치를 하면 되기 때문에 수술이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간내성은 문제 혈관이 간 속에 있기 때문에 찾기 어렵고 찾았다 해도 그 혈관을 막기 위해선 일단 간을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출혈의 위험이 높다. 큰 출혈이 없이 잘 찾아낸다고 하더라고 혈관의 위치나 굵기에 따라 변수가 많기 때문에 수술을 실패할 확률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두부는 후자였다.
'간내성'이라니.. 믿기 힘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믿고 싶지 않았다. 제주대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제주도내 유명하다는 동물병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대부분 어렵다고 했지만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원해서 얘기해 보자고 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고 수의사는 초음파를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두부가 힘들어했지만 잘 달래가면서 겨우겨우 초음파 검사를 마쳤고 수의사는 ct, 엑스레이, 초음파 결과를 전부 보더니 말했다.
"간외성인 거 같은데..."
"네?? 간내성이라고 하던데요."
"ct 말고 지금 초음파로 보니까 간외성인 거 같아요. 그리고 어디에 있든 일단 수술을 하면서 눈으로 직접 보고 찾는 게 제일 빠르지!! 일단 수술해 보면 될 거 같은데?!"
"........?"
이건 또 뭔 소린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수의사를 보니 어이가 없다 못해 순간 내가 동물병원이 아니라 어떤 사이비 종교 집단에 끌려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얀 가운에 단정히 빗어 넘긴 올백 머리, 금테 안경을 끼고 배부터 갈라보자고 말하는 모습이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확히 혈관 위치를 파악하고 시작해도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수술을 일단 배부터 열어보고 찾아보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ct도 아닌 초음파 사진을 보고? 순간 등골이 오싹해서 병원을 거의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잠깐이지만 간내성이라는 소리를 듣고 혹했던 내 모습에 이래서 사람들이 힘들고 마음이 약해질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기를 당하고 사이비종교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배부터 쨀뻔한 두부를 달래주고 있는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의 와이프 즉 제수씨가 수의사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부 사진을 보내며 부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온 것이었다.
"형 이 ct 어디서 찍었어요? 와이프가 학교에 보내서 부탁했는데 이 사진으론 판독하기 어렵데요. 다시 찍어야 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