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위로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집 안에 음악이 퍼진다.
평일 오전 9시, 라디오를 켜는 이 순간이 요즘 내 하루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휴대폰으로 EBS ‘온에어’를 누르면, 목소리와 노래가 천천히 집안을 채운다.
처음엔 영어 공부가 목적이었다. 한국에서 일할 땐 자연스럽게 쓰던 영어가, 노르웨이에 와서는 집에서 육아만 하고 있다보니 금방 어색해졌다. 남편 없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다가 더듬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이러다 다 잊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를 켜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 영어 프로그램 세 개를 연속으로 듣는 게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라디오 자체가 좋아졌다. 아침부터 틀어 두면 음악과 이야기 덕분에 하루가 조금 덜 고단해졌다. 자연스럽게 라디오는 내 하루의 작은 루틴이 되었다.
물론 육아를 하면서 라디오에만 집중할 순 없다. 손으론 이유식과 간식을 만들고, 눈으론 쌍둥이를 살펴야 한다. 그래도 볼륨을 조금 높여 두면 소리가 은근히 따라온다. 그 목소리가 의외로 큰 위로가 된다.
라디오를 들으면 학창 시절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두 살 많은 언니는 늘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무슨 라디오냐’고 놀렸지만, 언니는 두 가지를 다 해냈다. 나는 금세 책을 덮고 라디오만 듣고 있기 일쑤였지만, 그 시간을 좋아했다. 밤마다 흘러나오는 노래와 DJ의 목소리가 적막한 밤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꿔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라디오는 지친 하루 끝을 붙잡아 주는 작은 쉼표였다.
지금,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라디오는 다시 작은 힘이 된다. 집안일과 육아 사이에서 잠깐 숨을 고르듯, 세상과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외로울 때마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내 하루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오늘도 라디오는 내 옆에서 조용히 흐른다.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