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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건너, 오늘을 산다

지금 이 순간을

by rufina

쌍둥이가 잠들고 나면, 나는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남편은 “노르웨이 방송을 보면서 언어 공부도 해봐.”라며 일부러 서비스를 결제해 주었다.
이는 오히려 피로만 남겼다.
그래서 여전히 난 한국 프로그램에 손이 더 간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본 드라마 하나가 있다.
제목은 〈폭싹 속았수다〉.
처음엔 독특한 제목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내 마음을 깊게 흔들었다.
드라마 속 삶이 내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애순과 관식, 두 사람의 일생을 사계절로 그려낸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삶이란 특별할 것 없어.”


드라마 속 소년과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된다.
그 아이는 성장해 부모의 품을 떠나지만,
부모는 끝끝내 그 아이를 ‘아이’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평범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인생의 풍경이다.
아마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겠지.


세월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나를 지나쳐 간다.
종종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잠시 잡고서 한숨 돌리고 싶어진다.

내 앞에서 웃는 예쁜 쌍둥이들을 보며 행복하다가도,
문득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이제는 흐릿해진 그 시절.
왠지 더 많은 걸 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것 같아 아쉬움이 밀려든다.

‘더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걸.
여행도 더 많이 다닐걸.
더 자유롭게 살아볼걸.’


아쉬움에 잠시 잠겨,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짧은 답장이 왔다.


“너 정말 놀만큼 놀았어. 최대한으로.
이젠 그런 아쉬움 접어두고, 아이들과의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


따끔했다.

처음엔 섭섭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 말이 맞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렸고, 마음껏 웃고 울었다.
남들보다 더 길게, 더 진하게.


이제는 과거에 머물러 아쉬워할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야 한다.
아직 내 앞엔 수없이 많은 사계절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늘의 나는 충분히 살아있다.
언젠가 다시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어느 오후에,
나는 오늘의 나를 따뜻하게 떠올릴 수 있기를.


지금, 여기서 —
조용히, 그러나 충만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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