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한 마리
<아티스트 웨이>에는 이미지 보드, 비전 보드, 콜라주 혹은 이미지 스크랩북이라 불릴 만한 과제가 아주 많다. 주로 자기 소원과 관련된 특정한 주제를 주고, 잡지에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쓸만한 사진을 오려 붙여 눈에 띄게 만들어 놓는 형식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잡지라니요? 내 물질적 잡지 경험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매달 집에 오던 어린이 잡지가 마지막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자유롭게 자르고 오려도 되는 잡지 10권 정도'를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이야? 아, 두 권은 있군. 예전에 크로키를 연습하고 싶다고 도서관 폐기 나눔 도서에서 주워왔다가, 그림은 앞 몇 장만 따라 그린 패션 잡지다. 하지만 패션 잡지라서 그런가, 막상 주제에 맞게 잘라낼 만한 그림은 거의 없다... 열 권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괜찮은 여덟 권'이 갑자기 어디서 떨어진다는 말인가?
초반부에는 이러한 이유로 이미지 스크랩북 과제를 흐린 눈으로 못 본 척했다. 그러나 4주 차부터 매주 한두 개씩 콜라주 과제가 나왔다. 슬쩍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관련된 과제 목록만 대략 이 정도다.
평소에 꿈꾸던 이상적인 환경 / 가장 좋아하는 계절
확신이나 돈 중 하나가 내게 있다면 해 보고 싶은 다섯 가지 바람
당신이 꿈꾸는 삶 ver.2의 꿈 이미지
내가 스무 살이고 돈이 있다면 해 보고 싶은 다섯 모험의 이미지
내가 예순다섯 살이고 돈이 있다면 해 보고 싶은 미뤄둔 다섯 즐거움의 이미지
지금은 없지만 갖고 싶은 열 가지 품목의 이미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 새로이 떠오른 생각의 이미지
그림 자서전(과거, 현재, 미래, 꿈) 혹은 그냥 마음에 드는 이미지 콜라주
좋아하는 창작물, 즐겨 읽는 기사의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콜라주는 나만의 장소에 소중히 간직하며, 몇 달에 한 번씩이나, 꿈을 더 구체화시키고 싶을 때 새로 만들기.
잡지 한 권에 만원~2만 원 정도가 되니, 어쨌든 여덟 권은 '새 걸로 사서 해결하지, 뭐'라고 생각하기엔 좀 과한 숫자였다. 그러나 과제를 하려면 잡지가 있어야 한다. 어쩐다?
오늘의 주제 : 우연과 관심의 힘을 모아 잡지 열 권을 채워낸 이야기.
잡지 생각은 잠시 한구석에 접어두고, 병원에 갔다. 나는 다음 진료 예약을 잡으려고 기다리면서 옷가지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짜잔, 내 옆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잡지 트레이가 있다? 나는 좀 망설여 보았다.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봐도 되나? 생각해 보니 안 될 이유도 없었다. 그곳은 내 단골 병원이었고, 그냥 가져가는 거야 당연히 안 되지만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건 딱히 예의에 어긋날 바가 없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너무 많이 가져가기는 염치로서도, 또 들고 걸어 돌아갈 무게로서도 부담스러웠던 터라 올해 출간한 것들은 제외하고 세 권을 챙겨 왔다. 돌아오는 내내 신기한 기분이었다. 잡지를 찾으니까 잡지가 그냥 생기기도 하네, 그것 참 기이한 일이야, 하면서.
학교 근처에는 좋아하는 헌책방이 하나 있다. 내 책을 천 원에 사가서 만 삼천 원에 파는, 깔끔하고 크게 생겼고 책 위치를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는 그런 밍밍한 중고 서점 말고 진짜 헌책방! 내가 지나갈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들어가 둘러보거나, 집에서 떠나보낼 책 두세 권과 새 책 한 권을 가격 맞추어 물물교환하듯 맞바꾸기를 좋아하는 곳이다.
그날은 방학 중이었지만 학교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있어서 그 근방에 갔다. 헌책방에 잡지가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좀 싸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권당 이천 원이었다. 생각보다는 가격이 있었으나 두께와 흘끗 본 사진들이 꽤 괜찮아서 두 권을 샀다. 돈 없이 우연만으로 열 권을 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해 본다. 하지만 실제로 자리 잡고 사진들을 오려낼 때 이 두 권은 마음에 드는 컷이 다른 잡지의 거의 세 배 가까이 많았다! 아쉬움이 없을 만큼 값어치를 했다.
처음, 도서관 폐기 도서 더미에서 가져온 잡지 두 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도서관이 이 도서관이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 가는 길에 헌책방에 갔다고도 했는데, 그 도서관도 이 도서관이다. 첫 두 권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1년 중 한 번 있는 도서관 주간 행사 때문이었으므로 요행을 기대하진 않았다.
... 사실 기대했다. 그야, 한 번 있는 일이 혹시 두 번 있을 수도 있잖아.
필요한 반납을 하고 돌아 나오는 길, 이런 곳에 책장이 있었던가? 있었다! 알고 보니 주간 행사로 일부 도서를 자유롭게 반출할수록 있도록 한 이후, 그때 다 나가지 않고 남은 꽤 많은 잡지들을 그 자리에 두었던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인당 가져갈 수 있는 숫자가 최대 세 권이었다. 지금까지 일곱 권을 모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필요한 딱 그만큼.
아무래도 대학 도서관이다 보니 사진 없는 학술 잡지가 많아서 세 권 채우기에는 허탕인가 싶었다. 하지만 꼼꼼히 헤집어 보니 의외로 그냥은 구하기 힘든 사진 잡지도 있었다. 사랑의 열매에서 발매한 기부 장면이 모인 연말 잡지라든가, 인천공항이 만들어 여행 사진이 많은 것도 한 권 있었고. 또 일상 스포츠 활동을 취재한 잡지도 있어 특수하게 부족한 분야 사진을 채울 세 권을 챙길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좀 소소하기는 해도 흥미로운 동시성의 단편 아닌가. 찾아다니면 주어진다는 순진한 말을 약간 더 믿게 되었다.
우리 내부의 부정적인 목소리를 피하는 방법은 생각나는 대로 빨리 소원을 적는 것이다. 소원은 소원일 뿐이다. 아무리 바보 같은 것이라도 상관없다(이런 것들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대한 빨리 다음 문장들을 완성한다.
1. 나의 소원은 __이다.
2. 나의 소원은 __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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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은 __이다.
(pp. 187-188)
-브런치북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는 2025.1.12 ~ 2025. 4. 21간 수행한 <아티스트 웨이>의 실천 기록을 응집하고 정제한 에세이 형태로 연재됩니다.
-더욱 생생한 날 것의 기록이 궁금하거나,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정말로 창조적인 예술가가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아래 블로그로 놀러 오세요.
https://blog.naver.com/sth_meaningful/223723673385
-관련된 당시 포스팅은 이곳으로
https://blog.naver.com/sth_meaningful/223792638319
-동시성이란?
https://brunch.co.kr/@60bc51e769ff488/4
-표지 사진은 스크랩을 위해 잘라낸 <arte>1권 사진들 일부를 직접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