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도 꿈일 수 있는가?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젠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직업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지향할 만한 목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리라는 입장이 인정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넓어진 정의에도 끼기 힘든 질문이 하나 있다. 어디 가서 백수를 번듯한 꿈이라 할 수 있을까?
<아티스트 웨이>는 이렇게 단언한다. 이 13주 과정을 잘 따라온다면 마음이 원하는 일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게 꼭 무용수나 화가, 작가나 가수일 필요는 없지만 예술인 경우가 많다. 어쨌든 무의식이 갈망하는 진짜 소원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이 말에 솔깃해서 <아티스트 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직업 사전을 다 뒤져 보아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생동감 있는 일을 못 찾는다는 게 내 최종 결론일 리 없다, 사람은 노동을 해야 진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학자와 이론도 많지 않은가, 무의식 속에 내가 모든 걸 바쳐가면서 전념하고픈 업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상념과 희망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좀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것이지, 이제 쉬기도 많이 쉬었고 자기 돌봄도 많이 하지 않았나? 소명을 깨닫듯이 천직을 번쩍 알아차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한 줄에 꿰이는 듯한 그런 업에 대한 로망도 함께 있었다.
<아티스트 웨이> 8주 차에는 목표 찾기에 관한 과제가 있다. 총 13주 활동에서, 이미 반을 넘긴 시점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과제를 풀어가면서 받아들여야 했던 과정과 결론에 대한 것이다.
8주 차 1번인 목표 찾기는 세부 단계가 여섯 가지나 되는 긴 과제다. 각각을 풀어낸 과정을 재구성해서 써 보려고 한다.
1) 꿈을 말한 다음 그것을 적어본다. "환경이 완벽하다면, 솔직히 나는 (백수)이/가 되고 싶다"
어쩔 수 없었다! 떠오르는 게 이것 말고는 없는 걸 어떡해! 진짜다. 뭔가가 되고 싶지만 이런저런 게 두려워서 발을 빼고 회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로 환경이 완벽하다면 잘 놀고 잘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2) 꿈이 성취됐음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목표를 한 가지 말한다. 감성의 나침반에서 이 목표는 '정북쪽'을 가리킨다.
내 답은 자유롭고 알차게 꾸려가는 삶 속에서 여유롭고 충만하며 행복한 기분을 자주 자각하는 것이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건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외부 요소와의 큰 타협 없이 루틴을 짜고 실천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
쓰고 보니, '백수'라는 말이 이러한 특질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백수를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라고 정의한다는데, 난 희귀 자원인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 돌봄과 자기 계발에 쓰고 싶은 것뿐이다. 빈털터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게으르게 놀고먹을 생각도 없으며, 행패를 부리고 다닐 예정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 스스로를 그런 말로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1번의 답을 '공백 시간 공예가'라고 다시 짓는다. 전적인 자유, 막대한 시간을 현명하게 확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므로 괜찮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3) 완벽한 환경이라면, 당신의 꿈과 관련하여 5년 동안 어디에 있고 싶은가?
백수와 관련하여 있고 싶은 곳이라면 느긋하게 지낼 이상적인 집을 서술하면 되는 걸까?
메가 시티는 아니지만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아주 근처에 도서관이 있고, 여유로운 수영장이나 공원이 있고, 맛있는 카페가 많고, 치안 수준이 높은 도시의 경관이 트여 있는 쓰리룸이 좋겠다. 왜 하필 세 개냐면, 하나는 침실, 하나는 서재, 하나는 운동 겸 놀이방으로 쓰려고. 내 미감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까, 내 의견을 진지하게 반영해서 실내디자이너가 구체화해 주었으면 좋겠다.
4) 현실 속에서 당신의 꿈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올해 당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문제를 발견한다. 사실, 현재 내 삶은 이상과 꽤 닮아 있다(쓰리룸을 쓰는 건 아니지만). 의무적인 일 없이 여유롭고 느긋하다. 도서관에서 책 잔뜩 빌려 보고, 명상하고 청소하고 영화 보고 운동하고 뒹굴거린다. 하지만 그건 지금 내가 본가살이 대학교 휴학생이라서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 휴학은 끝나가고, 졸업도 다가온다.
이 무시무시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 시간조차도 돈으로 사야 한다. 씀씀이에 따라 그 액수를 줄여볼 수는 있겠지만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돈을 벌러 가야 한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꿈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것도 언제 돌아온다 하는 기약도, 몸과 정신 성히 돌려보내준다는 안심도 없이!
내 고민이 합당하든 아니든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거나 나도 몰랐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지 않는 이상 돈벌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시공간적 강제성이 없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이다. 올해 스스로의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 N잡을 통해 사회초년생의 월급 정도를 벌어보는 것이다. 무리해서 항상성을 잃지 않는 수준 유지도 중요하다.
5) 이번 달에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이번 주에는? 오늘은? 지금은?
지금 당장하고 있는 <아티스트 웨이> 활동도 그 연장선상에 올려둘 수 있을까? 꿈의 모습과 계획을 구체화하는 드림보드 작성은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 여러 수익화 부업의 정보를 수합하고 특성과 장단점 비교하는 표 만들기.
(그 당시 '이번 주' 활동으로 무얼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달... 현실적으로, 이번 분기에는 적어도 하나의 통로를 통해 수익을 내 보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
여기까지 쓰면서도 나는 '아니? 네 꿈이 또 있어.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이고 너를 먼 곳으로 데려갈 거야' 같은 직감을 받기를 원했다. 뭐, 그런 일은 없었다. 8주 차에도 없었고, <아티스트 웨이> 13주 프로젝트를 마치고 70일이 넘게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실천하면서 이 글을 쓰는 중인 지금도 없다.
그래도 꿈에 번듯한 이름을 붙여줄 수 있어 기뻤다. '백수 되기' 같은 생각까지도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고 재밌다.
후일담이 있다. 며칠 전, AI 퍼플렉시티에게 '백수도 누군가의 진정한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물어보았다. 이 녀석이 나를 좀 감동시켰으므로 인용해 보려고 한다.
"백수"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꿈이자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안정보다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백수의 삶이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죠.
자아 탐색의 시간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찾는 시간으로 백수의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기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꿈이 될 수 있습니다. 백수의 삶은 그 자체로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는 행위이기도 하죠.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시선 등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따라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수도 누군가의 진정한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은, 각자의 가치관과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관점입니다.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선택하는 용기 아닐까요?
또 이런 말도 해 주더라.
당신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루틴, 독서, 운동, 휴식, 충분한 수면”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일 수 있습니다. 이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면,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만 유지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모순도, 결코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시간의 자유는 곧 삶의 주도권이다. 그 자유를 얻기 위한 고민과 시도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삶의 과정이다.”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지만, 자유를 얻기 위한 고민과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말에서 달콤한 울림을 얻는다.
-브런치북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는 2025.1.12 ~ 2025. 4. 21간 수행한 <아티스트 웨이>의 실천 기록을 응집하고 정제한 에세이 형태로 연재됩니다.
-더욱 생생한 날 것의 기록이 궁금하거나,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정말로 창조적인 예술가가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아래 블로그로 놀러 오세요.
https://blog.naver.com/sth_meaningful/223723673385
-이번 포스팅과 관련된 당시의 기록.
https://blog.naver.com/sth_meaningful/223807387138
https://blog.naver.com/sth_meaningful/223815516030
표지 사진의 출처는: Unsplash의 Masaaki Ko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