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이 부동산에 치우쳐 있는 것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주식 등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택과 기타 부동산의 합산이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돈 벌 방법이 부동산뿐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신혼 시절에만 해도, 주식은 곧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주식 매매를 편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 내 연식이 꽤나 지긋하게 느껴진다. 널리 알려진 엔비디아 주식으로 퇴사한 영 리치, 코인으로 대박 난 사회 초년생, 배당 ETF로 일찍 은퇴한 파이어족 부부 같은 이야기들은 코로나19 대혼돈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과 5~6년 이내의 일이다.
그 이전엔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은 있어도, 주식으로 부자 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경제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진지하게 공부한 후에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누가 뭘로 벌었다더라’하는 소문에 휩쓸려 성급하게 투자했다.
기관과 외인에게 두 발 늦게 대응하며 ‘개미 털기’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스마트폰 기반의 MTS가 상용화되기 전이라 주식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높았으며, 외국 주식 투자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정보는 폐쇄적이었고, 대응은 늘 늦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2025년 지금 시점에서는 ‘누구든 무엇으로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더 맞다. 고등학생들도 학교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주식 계좌를 확인하는 시대다. 양질의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고, 외국 주식 시장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개별 주식 운용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ETF가 쏟아져 나온다. 금융 자산 위주의 노후 준비를 유도하는 절세계좌도 보편화되었다.
사고 싶을 만큼 좋은 아파트 단지는 이미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올랐고, 부동산 매입을 위해 거대한 목돈이 필요해져 버렸으니, 내가 자산을 키울 방법은 영영 없어졌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부동산이 전부가 아닌 시대이다.
요즘은 주변에 주식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예전엔 도시 전설처럼 전해져 오던 젊은 주식 부자들이 이제는 실제 인간관계의 경계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실 나도 주식에 관심을 가진 지는 꽤 오래되었다. 대학교 시절 만든 증권사 CMA 계좌가 그 시작이었고, ELS와 차이나주식펀드도 접하며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아보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주식 공부를 해온 역사가 있으면 주식 고수가 되어 일찍이 부자가 되었다는 스토리가 많은데, 나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숫자에 약해서 글만 찾았다. 경제 지표와 재무제표 등은 등한시하고 뉴스 위주로 관심을 쏟았다. 잘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려고만 하다 보니 늘 한 박자 늦었다. 특히 사람들은 ‘샀다’는 소식은 잘 알려도 ‘팔았다’는 소식은 잘 알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 와중에 겁이 많았다. 자고로 주식으로 돈을 벌려면 ‘비중’을 싣어야 한다. 옥석만을 골라 잘 모아둔 명품관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내 계좌는 대체로 ‘다이소’였다. 여러 종목을 찔끔찔끔 모아 켜켜이 쌓아둔 모양새였다.
조금 산 주식은 잘 오르고, 떨어지는 주식에는 자꾸 물을 타서 손실액을 늘리고 강제로 장기투자를 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비중’을 싣는다는 것은, 내가 한 종목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몇 천에서 몇 억에 이르는 큰돈을 한 두 종목에 넣으려면 그 기업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확신을 얻기 위한 고통을 생략하기 때문에 주식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나는 공부도 충분히 하지 않았고, 담이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패가망신을 하지는 않았지만, 큰돈을 벌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도 항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내 주식 시장은 개인이 돈 벌기에 너무 어려운 시장이라는 것이다. 큰 사회 흐름을 보고, 한 산업 섹터를 고르고, 해당 섹터의 유망 기업들을 리스팅 하고, 리포트를 읽고, 수급을 분석하는 것 정도는 나도 했다. 그래도 부족했다. 한 회사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조금 더 내부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실적보다 외부 상황에 의해 주가의 향방이 좌우되는 경우도 많았다. 시장이 작다 보니 테마주나 정치주에 돈이 우르르 쏠리면 다른 섹터는 금세 힘이 빠지기도 했다. 개인 투자자 수준의 공부로 커버할 수 없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나는 국내 주식 시장을 포기했다.
미국 주식 시장에서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제2의 테슬라를 찾겠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망주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매일 보면서 그의 말에 휘둘리기도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미국 주식도 개별 종목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 주식 지수 투자는 쉽다.
정신 차리고 방향을 확실히 정한 지 2년 정도 되었다. 아직까지는 미국 주식 지수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부부의 자산에 부동산의 비율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부침이 있었던 주식 투자와 달리, 부동산 자산은 항상 우리에게 수익을 안겨주었다. 수익의 단위도 몇 억대였으니 한 번씩 집을 팔고 살 때마다 계단식으로 자산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갈아타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출이라는 레버리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노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이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50대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본격적으로 애써야 한다. 각종 연금을 대출 원리금 갚는 데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대출을 먼저 해결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퇴직금은 든든하게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고 자식들 용돈, 여행 자금, 의료비 예비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생활비는 연금+a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택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에도 주택에 대출이 걸려있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끝없이 대출을 얹어가며 상급지로 갈아타기를 할 수는 없다는 거다. 어느 순간에는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멈추고 대출을 줄여가며 금융 자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부동산 자산과 금융 자산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젊을 때부터 주식 투자 비중을 높게 가져가며 갈아타기를 제한하고 적당한 수준의 부동산을 매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부동산 갈아타기에 집중하며 적정 나이가 되었을 때 갈아타기를 멈추고 주식 투자를 늘린다.
첫 번째 방법은 대출 부담이 적다. 대출 원리금이 적고, 본인이 소비와 투자 패턴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생활 면에서 더 여유를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주식 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돈을 불릴 수 있는 과감한 투자도 하되 장기 투자 하고자 하는 마음 가짐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대출 부담이 크므로 강제 저축의 측면이 커진다. 생활비 운용의 융통성이 적고 생활의 여유가 적을 수 있다. 집값이 올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니 현금 흐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갈아타기를 통해서 자산을 계단식으로 불릴 수 있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다. 나는 두 번째 방법에 가까운 방식을 취해왔다. 워낙 없이 시작한 살림이다 보니 대출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에서 성공 경험이 별로 없는데, 대출까지 활용해서 덤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면에 집을 사고파는 것은 나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는 자세를 고쳐 잡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갈아타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다만 상급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 있는 데다가, 자녀 교육비 상승과 남편의 조기 퇴직 리스크를 고려하여 대출을 늘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무리해서 갈아타기를 노리지 않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려 한다. 동시에 금융 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현금흐름이 중요해지는 나이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주식으로도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좋은 때가 온다면 주식을 정리하여 시드 머니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도 주식도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방면의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고, 가정 경제와 거시 경제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좋은 곳에 씨를 뿌려 두면 언젠가 알토란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마인드셋을 단단하게 심어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