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에게 새롭고 예쁜 물건을 시도 때도 없이 제공해 주는 것은 가정 경제에 부정적일뿐더러, 자녀의 가치관을 키우는 데도 해로운 일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욕을 심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재글에서 언급한 대로, 같은 가격이라면 물건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가 커지면서, 재화와 돈에 대한 개념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아이가 다니는 수영장에서는 아이들 운동 시간 동안 보호자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그중 한 보호자는 늘 쌍둥이 아들들을 챙기느라 수선이었다. 그맘때 아이들이 그렇듯, 무언가를 샤워장에 놓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남자 샤워장이라 직접 들어가 볼 수가 없으니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무언가를 놓고 나오는 일이 반복되자 그 보호자는 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찾아서 오는 사람한테 2천원 줄게.” 이런 문제로 돈을 내세운다고?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안 보이던 물안경이 2천원 건다고 눈에 띌까? 그 말을 듣고 샤워장으로 달려 들어간 쌍둥이들 중 한 명이 금세 뛰쳐나오며 외쳤다. “엄마 제가 찾았어요!” 그다음 주에는 수영모 2천원, 팬티 5천원, 수영복 3천원. 아이들은 그 후로도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돈은 노동의 대가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물건이나 체험과 교환되어야 한다. 자기 물건을 챙기는 일은 ‘자조’의 일종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학업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꾸리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노동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제공되는 가치 있는 체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조 활동의 대가로 부모가 돈을 제공한다면, 아이들은 이런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내가 하는 행동이 부모에게 좋은 일이구나. 그래서 나는 대가를 받는 것이다.’ 내가 물건을 잘 챙기는 것도,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모두 부모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꾸리는 것에 도움이 될까? 자립심을 가지고, 내 인생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일까? 격려의 의미로 일회적인 선물이나 용돈을 주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음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잘 아는 아이들이 자라서 돈을 잘 벌 수 있고, 불릴 수 있고, 지킬 수 있다. 마땅한 가치를 제공하여 돈을 벌고, 그 돈을 소중하게 여겨야 아껴 쓸 수 있고, 지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은 아이들에게 함부로 돈과 재물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쯤 되면, 회사 다니는 아빠보다 더 많은 용돈을 쓴다. 학교 끝난 후 바로 학원을 가다 보니, 그 중간 시간에 편의점에 들른다. 학원 강의 시간이 3~4시간쯤 되니 중간에 또 편의점에 들른다. 학원이 모두 끝나면 출출하니 또 편의점에 들른다. 오가는 길에 카페가 있으면 달달한 음료로 당을 보충한다. 이 정도의 평범한 하루에 적어도 2~3만원의 비용이 든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면 PC방 사용료와 음식값, 마라탕, 버블티, 인생네컷 등으로 더 많은 돈을 소비한다. 틈틈이 옷과 신발 등도 남들 사는 만큼 사야 하니 품위유지비가 든다. 더 큰 문제는 중학생 아이들에게 ‘너 한달에 얼마나 쓰니?’라고 물으면 ‘몰라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현금의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다. 부모님의 신용카드를 쓰거나, 본인의 체크카드에 필요할 때마다 부모가 돈을 넣어주는 형태로 지출을 하다 보니, 본인이 쓰는 양을 가늠하지도 못한 채 소비를 한다.
나는 이런 소비 행태가 어릴 적 제공받은 불로소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가 없이 받은 돈을 고민 없이 쓰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굳어진 소비 습관을 고치는 것은 편식 고치기만큼 어렵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씀씀이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회초년생이 되어 자신이 쓰는 돈에 비해 버는 돈이 늘 모자라고, 자신의 노동의 가치에 불만족하게 되는 흐름이 당연해 보인다.
나는 모든 물건을 최소한으로 집에 두려고 노력한다.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고, 살림을 관리하는 에너지를 줄일 심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이 집은 물건이 너무 많다며 타박을 받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하다. 특히 아이들 물건은 어지간해서는 집에 들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필요한’ 물건이 아니고, 사용기간이 너무 짧아 정리하고 처분하는데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남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생길 때면 항상 이런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 물건이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거야? ‘필요하다’는 건 없으면 불편하고, 네가 뭘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야.” 이때 아이가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그 물건은 기꺼이 구입한다. 하지만 보통 10개 중 8-9개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임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물욕을 자제하지 못할 때에는 이렇게 묻는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모두 사면 우리 집이 어떻게 될까? 네 방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봐.” 물건으로 꽉 찬 방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되는 상상을 충분히 하게끔 유도한다. 나는 꾸준히 이런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물건은 가지고 가지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아이에게 용돈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용돈은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분실 위험과 관리의 편의성을 이유로 대다수의 부모들이 체크카드 사용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소액의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아이가 현금을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금을 소중하게 쟁여 두었다가 필요할 때 챙겨 나와서 내내 책임감 있게 챙기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물건을 살 때 가격표를 보고 자신이 가진 돈의 양과 쓸 수 있는 양을 가늠해봐야 한다. 숫자로 나타나 있는 돈을 다루기 전에, 직접 손에 닿고 무게가 느껴지는 진짜 돈을 다뤄봐야 한다. 유아기 수학 교육에서 수식을 사용하여 덧셈 뺄셈을 가르치기 전에 교구를 필수적으로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 돈 거리는’ 일이 아이로 하여금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인상을 주거나, 아이가 친구들처럼 돈을 펑펑 쓰지 못하여 무시받을까 봐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 단순히 ‘돈을 쓰지 마’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필요한 일에 필요한 만큼 돈을 쓰고, 심플하고 효율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계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절약이 아닌 현명하게 소비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다.
부자 중에 돈 함부로 쓰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부자는 필요한 곳에는 망설임 없이 돈을 꺼낸다. 하지만 가치가 남지 않는 것에는 지갑을 함부로 열지 않는다. 돈을 버는 것만큼 관리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가치 없는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자의 마인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