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종류가 많지?
러닝을 시작한 지는 꽤 됐지만, 대부분 트레드밀에서 뛰기에 가끔 트랙이 아닌 곳에서 쉬엄쉬엄 뛸 때는 아직도 10년 된 운동화를 신고 뛰고 있었다. 나이키 플라이니트 소재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발에 딱 달라붙는 그 신발은 그동안 함께 달린 거리만 해도 수백 킬로는 족히 될 거다. 당시 유행했던 슬로건처럼 ‘발처럼 가벼운’ 그 녀석을 나는 양말도 없이 신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 안쪽 아치 부분이 자꾸 쓸리는 걸 느꼈다. 발과 신발 사이의 예전 같지 않은 그 ‘유대감’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확인해 보니 이미 밑창은 거의 닳았고, 중창과 갑피의 연결 부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신기엔 위험할 수 있겠다 싶어, 이참에 러닝화를 바꾸기로 했다.
막상 고르려니 쉽지 않았다. 요즘 시중에 나온 러닝화는 브랜드도, 목적도, 가격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런데 대략적으로 분류해 보면 러닝화는 아래의 세 가지 라인업으로 나눌 수 있다.
대표 예: 나이키 줌엑스 베이퍼플라이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호카 카본 X 시리즈 등
이 라인업은 말 그대로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한 달리기를 위한 신발이다. 탄소 섬유 플레이트가 중창에 내장되어 추진력을 극대화하고, 초경량 소재를 써서 최대한 신발의 무게를 줄였다. 반발력이 뛰어나고, 마치 발이 튕겨나가는 느낌을 준다. 단점은, 가격이 25만 원 이상으로 높고, 내구성이 일반 트레이닝화보다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300~500km를 넘기기 전 교체하는 러너들도 있다.
작년엔가 ‘카본화 상시 단속 안내문’이 러너들에게 재미거리로 오르내렸던 적이 있다. 카본화는 신발 중창에 ‘카본 플레이트(Carbon Plate·탄소섬유판)’가 삽입된 특수 러닝화를 일컫는다. 발바닥에 용수철 달린 듯 반발력을 극대화한 신발. 대단한 기술 발전이긴 하지만, 내겐 체력 향상이 먼저 이기에 패스.
대표 예: 나이키 페가수스
뉴발란스 1080
아식스 젤 님버스
이 라인은 매일 뛰는 사람들을 위한 ‘데일리 슈즈’다. 쿠셔닝과 반발력의 균형이 좋고, 대부분의 러너에게 무난하다. 특히 러닝 입문자부터 중급자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어 가장 인기가 많다. 10~18만 원대 제품이 많고, 충격 흡수력과 발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소재들이 들어가 있어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를 덜 주는 편이다.
예전에는 딱딱하고 가벼운 신발이 인기였는데, 요즘은 확실히 반발력이 중요해진 것 같다. 그래서 예전 보다 미드솔의 두께가 두꺼워져 신기한 디자인의 신발도 많다. 가장 무난하게 고를 수 있는 게 10만 원대의 제품일 듯.
대표 예: 데카트론 러닝화
아식스 젤 컨텐드, 젤 엑설
나이키 레볼루션 시리즈 등
이 라인은 러닝을 막 시작한 사람들, 혹은 가볍게 조깅하거나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뛸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성능은 상위 라인업보다 떨어지지만, 최근엔 소재 기술이 전반적으로 좋아져서 충분히 쓸 만하다. 5만 원 미만으로도 구매가 가능하고, 세일 기간에는 중가 트레이너도 이 가격대로 내려오곤 한다.
전형적인 가성비를 위한 신발이다.
원래 싼 신발도 있지만, 가끔씩 하는 큰 세일 때 10만원대 제품을 10만원 미만에 구매할 수도 있어서 세일 때가 되면 좋아하던 모델도 세일에 포함되었는지 꼭 보곤 한다. 물론 무턱대고 사다간 "니가 사람이지 지네야? 뭔 신발이 이렇게 많아!?"라는 엄마/배우자의 잔소리와 등짝 스메싱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결국 고가도, 중가도 아닌 저가의 러닝화를 선택했다. 원래도 10만원 초반인 엔트리 제품인데, 갑작스럽게 미국 아디다스에서 세일을 해서 39달러에 구매했다. 한국 돈으로 치면 5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사실 매주 서너 번은 뛰지만, 아직 10km를 넘어 달려본 적도 없고, 나의 러닝 기록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굳이 고가의 신발을 신을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신발을 신느냐’가 아니라, 그 신발을 신고 얼마나 꾸준히, 안전하게, 즐겁게 뛸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이 신발이 닳을 때까지, 나는 다시 내 러닝 루틴을 만들어 보려 한다. 하루 5km라도 꾸준히. 기록이 아니라 흐름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나도 카본 슈즈를 고민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전까지는 신발이 닳더라도 핫딜이 올라오길 기다리며 버텨야지.
근데 왜 러닝화를 신는 게 좋을까? 그냥 패션화를 신어도 되고,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맨발로 뛰어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러닝화 한 켤레가 체중의 몇 배에 이르는 충격을 수천 번 연달아 받아내며 우리 몸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떤 신발이든 비슷하겠지”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오해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러너들이 가장 흔히 겪는 세 가지 고질 통증(무릎, 아킬레스건, 족저 근막)에 신발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찾아본 결과를 정리하였다.
왜 쿠셔닝이 부족하면 무릎이 아플까? 착지 순간, 무릎 관절에는 체중의 2.5~3배에 달하는 수직 충격이 걸린다. 밑창이 낡거나 단단하면, 이 충격을 중창 → 발 → 정강이 → 무릎으로 거의 그대로 전달한다. 마찰이 반복되면 슬개(무릎뼈) 아래 연골이 미세하게 마모돼 ‘러너스 니(Runner’s Knee)’나 연골연화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다면 ‘푹신할수록 무조건 좋을까?’
과도한 쿠셔닝은 착지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발목과 무릎의 ‘고유수용성(내 몸 위치를 감지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착지 각도가 흔들리면 오히려 무릎 내·외측에 비대칭 하중이 생긴다.
쿠셔닝이 많으면 보통 무게도 늘어난다. 100 g 무거워질 때마다 10 km 러닝에서 산소 소비량이 약 1%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로, 신발 중량은 피로감과 직결된다.
실전 팁: 주 3회 이하·러닝 거리 10 km 미만이라면, “매우 폭신 → 중간” 정도 쿠셔닝을 추천. 주 4회 이상, 기록 지향 러너라면 “중간 → 살짝 단단” 쪽이 효율적이다. 자신의 보폭과 착지 느낌이 또렷하게 느껴질 정도가 ‘딱 맞는’ 쿠셔닝이다.
힐 드롭이란 뒤꿈치(Heel) 스택 높이 – 앞발(Toe) 스택 높이를 말한다.
예) 뒤꿈치 32 mm, 앞발 20 mm → 힐 드롭 12 mm.
러닝화를 신었을 때 일반 패션화에 비해 밑창이 앞으로 많이 기운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걸 수치화한 것이 힐 드롭이다.
그럼 낮은 힐 드롭이 왜 아킬레스건에 부담을 줄까?
드롭이 낮으면 러너의 발목은 '더 많이 굽혀진 상태(배측굴곡)'에서 착지한다.
이때 '아킬레스건·종아리 근육(비복근, 가자미근)'이 길게 늘어난 채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힘줄 미세 손상 → 염증(건염)으로 이어지기 쉽다.
모두에게 높은 힐 드롭이 답일까?
평소 맨발감각(제로 드롭)에 익숙한 러너라면 오히려 높은 드롭이 ‘뒤꿈치 착지 → 무릎 전단력 증가’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높은 드롭의 러닝화로 교체했을 경우 2~4주간 번갈아 신으며 종아리 스트레칭을 병행해야 적응 통증을 줄일 수 있다.
밑창이 닳으면 뭐가 안 좋을까? 단순히 더 미끄러지는 수준이 아닐까? 그런데 실제로 밑창이 많이 닳은 상태에서 달려보면 발바닥이 아픈 경우가 종종 있다. 이건 지지 구조 붕괴 때문인데, 밑창이 한쪽으로만 마모되면 접지각이 변해 발의 내·외측 압력 분포가 불균형해진다.
또한 충격 흡수력 저하도 야기하게 된다. 중창(eVA·PEBAX 등)의 기포 구조가 납작해지면 스프링 효과가 소실된다. 충격이 발바닥 내 아치와 족저 근막에 직접 전달되어 족저 근막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주행 거리 600~800 km 또는 밑창 패턴이 50% 이상 닳았을 때 교체하고, 러닝 전·후 발바닥·종아리 폼롤링으로 근막 긴장을 풀어 준다. 통증 초기엔 낮은 드롭, 부드러운 아치 서포트가 있는 신발이나 인솔로 족저 근막의 장력을 덜어 준다.
러닝화를 고를 때마다 “내 몸이 어디에 민감한가?”, “러닝 목표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다면, 브랜드가 앞세운 화려한 기술 대신 진짜 내 발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신발 한 켤레 덕분에 러닝이 운동을 넘어 일상의 흐름이 되길. 당신의 다음 걸음이 더 가볍고, 무엇보다 통증 없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