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완주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회사에서 그나마 동갑이라 내적 친밀감이 있던 동료와 업무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건 사적인 얘기인데, ' 라며 뜻밖의 메시지가 왔다.
"르미님, 이번에 근처에서 마라톤 하던데 신청하셨어요?"
"네? 저 아직 마라톤은 해본 적이 없는데. 내년 봄에 처음으로 도전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뭐 별거 없어요. 지금도 자주 뛰고 계시니까 한번 신청해 보세요."
"마라톤 신청하는 거 어렵다고, 콘서트 예매 수준이라고 하던데 가능할까요?"
"동네 마라톤이라서 열린 지 2주가 넘었는데 아직도 마감 안 됐어요."
"몇 km 신청하시게요?"
"그때 10km 한번 해보고 하프 도전해 봤는데 정말 힘들었었거든요. 그래서 10km 할지 하프 할지 고민 중이에요."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 10km로 신청해 보겠습니다. 그럼 대회 때 봬요~"
물론 언젠가 마라톤에 나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간다고 해버렸다. 마라톤은 다들 신청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동네에서 하는 건 말은 국제마라톤이지만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가서 기념 티셔츠 사이즈를 선택하고 5분 만에 접수가 끝났다.
후들후들, 이제 정말 대회에 나가는구나.
말 그대로 동네 마라톤이라서 누군가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뛰고 오겠지만, 처음 나가는 거라 그런지 왠지 떨렸다. 뭐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며 과연 완주는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이제 60일 남짓 남았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봤다.
다행히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 사는 곳이라 코스는 생소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자주 타러 가던 곳이었고, 예전에도 마라톤이 열리는 걸 많이 봐온 곳이었다. 혹시 모르니 날 좋을 대 자전거로 코스를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도시 자체가 매립지 이기 때문에 지형의 고저가 없고 모두 다 평지라서 페이스를 흩트릴 요인은 없고, 바다 근처긴 했지만 바람이 그렇게 센 곳은 아니라 맞바람으로 고생할 것도 없다. 문제는 온도인데, 대회가 열리는 9월 말에 얼마나 더울지가 관건이었다. 오늘도 아침에 동네를 뛰어봤는데 페이스를 떠나 엄청난 땀으로 5km를 뛰기도 버거웠다.
확실히 무릎 통증의 해결책을 찾고 달리는 게 편해졌고, 그래서 주중엔 가능하면 매일 트레드밀을 짧게라도 뛰려고 했고, 주말에도 한 번은 야외에서 뛰려고 했다. 워치로 찍힌 기록을 보니 7월에 110km 정도를 달렸다. 이렇게 열심히 달렸던 적이 있었나 싶었고, 이렇게 아프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확실히 코어 근육 운동을 병행했던 것이 달리는 동안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줬고, 달리기 전 후에 스트레칭과 쿨다운을 착실히 한 게 몸에 부담을 덜어줬던 것 같다.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3달 사이 6kg 정도를 감량하면서 무릎에 부담도 많이 줄었다. 저녁만 관리했는데도 큰 어려움 없이 빠졌던 걸 보면 그냥 좀 과하게 지방이 있었던 듯하다.
문제는 꾸준함이다. 8월에는 휴가도 계획되어 있어서 과연 마일리지 100km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 휴가 중에 뛸 수는 있겠지만 가족들에게 민폐가 될 순 없으니 조금씩이라도 감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위에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 계절의 영향도 있지만 내 대부분의 달리기는 트레드밀이다. 트레드밀의 장점이자 단점은 기계가 페이스를 조절해 준다는 것이다. 진짜 달리기 싫은 날에도 정해진 페이스에 놓고 억지로라도 달렸다. 물론 어딘가 아프면 멈췄지만 단순히 근육이 힘든 거면 여간하면 달리려고 했다. 근데 그게 외부에서는 달라진다. 힘들면 늦게 뛰게 되고 나도 모르게 빠르게 뛰다가 호흡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많다.
시계를 보고 페이스를 체크하는 방법도 있지만, 페이스 계산 자체가 최근 몇 초간의 페이스이기 때문에 숫자가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이 페이스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내 워치가 가민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생각한 훈련법이 정해진 코스를 반복해서 달리기이다. 공원의 원형 코스를 계속 달리면서 페이스를 체크하면 순간순간의 페이스 변화 보다 더 정확하게 페이스를 측정할 수 있다. 원형 코스의 길이가 1km 정도 되는 곳이 좋다. 그래서 한 바퀴를 돌 때 600으로 뛰어야지 하고 시간을 보고 맞춰서 뛰어보고 그다음은 550으로, 500으로, 650으로 달리면서 속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훈련법으로
템포런 (편안하게 대화가 가능한 수준의 속도로 20~40분 정도 달리는 훈련)
인터벌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한 후,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전력 질주하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
크루즈 인터벌 (템포런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5~10분 정도 달리고 짧게 휴식하는 훈련)
파틀렉 (스웨덴어 '스피드 플레이'를 뜻하며, 빠른 속도와 느린 속도를 번갈아 가며 달리는 훈련)
LSD (Long Slow Distance 장시간, 저속으로 달리는 훈련)
등이 있는데 일단은 페이스 유지를 우선으로 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무릎이 아플 때 근골격치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무릎 보호대는 기록을 위한 것이지 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픈 것의 원인을 찾아야지 아픈 것을 단순히 안 아프게 하면 몸은 더 고장 납니다. 무릎 보호대를 해야만 뛸 수 있으면 뛰면 안돼요."
달리기는 내가 좋아서, 내 건강을 위해 뛰는 것이다.
괜한 경쟁심에, 욕심에 몸을 혹사시키면서 까지 대회에 나가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지금까지 그랬듯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에게 맞는, 나를 위한 달리기를 이어가야겠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떠나서, 왠지 모를 이 긴장감이 날 더 떨리게 한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내가 대회를 나간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잘 달려준 나에게 고맙다. 대회까지 잘 준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