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목표를 달성했나요?
처음엔 그냥 달리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몸이 좀 무거워서, 마음이 가라앉아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트레드밀 위에 올랐다.
얼마나 뛸지도 모르고, 어디까지 갈지도 모르고, 그저 힘들면 멈췄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시작됐다. 아주 조용하게.
그때까지만 해도 내 달리기는 그냥 평범한 달리기였다. 그러다가 그리 친하지 않은 동료와 이야기하다가 취미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여러 취미가 있었지만, 나 보다 나이도 젊기도 했고, 요즘 러닝이 대세이긴 해서 가볍게 대답했다.
"요즘은 가끔 헬스장에서 달리기 해요."
"아, 그래요? 저도 달리기 하는데, 혹시 마라톤은 나가 보셨어요?
"아, 그건 안나가 봤는데..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에요."
"그럼 페이스는 몇 정도로 뛰세요?"
"페이스는 잘 모르겠고 트레드밀에서 9 정도 놓고 뛰고 있어요."
"그리 나쁘지 않네요! 한번 마라톤 도전해 보세요. 꾸준히 연습하시면 가능할 거예요."
'마. 라. 톤.?'
'내가?'
엄청 뜬금없지만,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은 힘들어도 한번 길게 뛰어 보기로 했다. 2km쯤 지난 후 슬슬 몸이 힘들었고, 3km 지나니 근육이 뻐근해졌고, 4km를 지나니 숨이 헐떡 거렸다. 그래도 5km까지는 어떻게든 뛰어보겠다며 어떻게 어떻게 5km라는 숫자를 보고 바로 중단을 눌렀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너무 힘들었는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가 해냈다.
실제로 난 5km를 달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5km를 달리고 나니 괜히 뿌듯했다. 마치 내가 목표를 5km로 한 것처럼.
그래서 깨달았다. 일단 달리면, 일단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 그렇게 내 달리기는 시작했다. 매번 작은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달리던 달린 후 내 성과를 칭찬하면서.
뛰는 것 자체가 목표였지만, 그래도 뭔가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내가 세운 목표는, 10km를 한 시간 안에 달려보기였다.
뛰어본 적도 거의 없던 내겐 꽤 큰 도전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조금 접었다.
빠르게 가 아니라, 멀리까지.
속도보단 거리부터.
그렇게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다 보니,
7.5km까지는 끊기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속도는, 신기하게도 따라왔다.
지금은 페이스 6분으로 7~8km는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물론 달리기가 항상 우상향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7km까지 큰 어려움 없이 뛰다가, 어떤 날은 5km도 간신히 뛰기도 했고,
실내에서 뛰는 것과 밖에서 뛰는 건 달라서, 트레드밀에선 쓰러질 듯 하지만 결국 그 페이스에 맞춰서 쳇바퀴 위에 다람쥐처럼 헐레벌떡 달리지만 밖에선 그 페이스가 안 맞춰지니 뛰다가 결국 멈출 때도 많았다.
그래도 좋았다. 오히려 내가 세운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면 그게 더 아쉬울 듯도 했는데, 이 목표는 가까운 듯 멀리 있고, 멀리 있는 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앞에도 말했지만, 달리기를 하다 보니 꼭 목표를 세워야만 하는 건 아닌 걸 알게 됐다. 마치 우스갯소리처럼 수영을 배우면 생존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배우게 된다는 말처럼, 달린다는 것은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골프나 축구나 탁구처럼 점수 내기도 아니고 그냥 뛰는 거다. 물론 기록이 있긴 하지만, 기록보다는 달리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작은 성취 앞에서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안 쉬고 5km를 뛰었네.”
“더위에도 포기 안 하고 끝까지 해냈네.”
“기록보다 마음이 더 대견하네.”
이런 말들이 모이면, 다시 내일도 달리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기록에 비교되지 않고,
그냥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해진다.
요즘 나는 나만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달리는 나의 모습을 액션캠으로 담아보는 것.
숨이 거칠고, 얼굴은 붉어지고, 땀이 흐르는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내 증거 같아서.
혹시라도 이 영상이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흔한 BGM도 없지만, 처음으로 내 달리기를 기록한 영상을 업로드해봤다.
달리기는 점수가 아니라 마음이다.
얼마나 빠르게 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나는 오늘도 내 속도대로, 조용히 달린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좋아하게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