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열기에 나도 같이 빠져 보기
마지막 방문 도시는 시드니였다. 하버브릿지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떠오르는 이곳은 내가 방문했을 때 며칠 후 예정된 시드니 마라톤으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도시 전체가 러닝에 미쳐 있었다. 역 앞에도, 공원에도, 바닷가에도, 다리 위에도, 심지어 건물 사이 보도에도 뛰는 사람이 넘쳐났다.
이렇게 단체로 방문해서 며칠 후 마라톤을 대비해 운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앞서 방문했던 도시들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뛴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여긴 그냥 도시 자체를 관광객과 러너들이 점령한 느낌이었다.
마치 얼마 전 읽었던 삼체(3 body problem)에서 처럼 사람들이 모두 호주로 밀려와 사는 느낌이랄까?
10일 이상 매일 3만 보 수준으로 걷다 보니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곧 마라톤이 있으니 훈련을 안 할 수 없기에 부랴부랴 러닝화를 챙기고 출발했다.
원래 5km 마라톤 코스는 하버브릿지를 달리는 것이었는데, 이틀 연속 교통 통제가 어려워 5km 코스가 갑자기 변경됐다. 어차피 그 코스나 이 코스나 안 달려본 건 맞았기에 지도를 보고 먼저 따라 뛰어 보기로 했다.
시작점은 보타닉 가든이었지만, 집에서 출발해서 중간 기점인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먼저 지나서 보타닉 가든으로 향했다.
역시나 마라톤 바로 직전이라 그런지 뛰는 사람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좁은 길인데 다들 뛰느라 바쁘다.
드디어 대략적인 출발점에 도착. 어디서 출발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공원 안에 도로를 통제하고 도로를 만여 명이 달리게 되겠지 하고 상상해 본다.
미술관을 지나서 첫 번째 반환점을 돌고
공원을 빠져나오려니 꽃길이 눈에 보인다. 그러고 나서 다시 2차 반환점인 대성당까지 달린 후에
대성당에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긴 직선거리를 달리게 된다. 대회 때는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다 정리될 테고 여기가 사람들로 가득 차겠지.
한적한 거리를 뛰고 뛰다 보면,
드디어 결승점인 오페라 하우스가 보인다. 원래 도착점은 여기가 아녔는데, 변경하면서 풀코스와 동일한 결승점을 통과한다며 광고하던 게 생각난다.
이날은 아직 경기까지 3일 정도 남은 날이라 아직 결승점 공사는 시작 안 하고 있었는데, 대회 날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두 번의 반환점도 그렇고 길이 어색해서 뛴 시간보다 허둥지둥 된 시간이 더 길었던 듯하다. 잘 뛸 수 있겠지?
https://youtu.be/I-xZt1CT-ok?si=x3hdGk370Crj6kft
원래는 경기 전에는 쉬려고 했는데, 시드니에 왔는데 한 번만 뛰기도 좀 아깝고, 어차피 매일 뛰는 거리인 5km 정도이기에 경기 전날에도 눈 뜨자마자 뛰기로 했다. 오늘은 원래부터 달려보고 싶었던 하버 브릿지를 달려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다행히 멀지 않아서 쉽게 브릿지 입구를 찾아서 올라왔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멋지다. 멈춰서 보고 싶긴 했으나, 오늘 또 일정이 있으니 뛰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리에 진입하는 길을 지나 진짜 하버 브릿지에 도착했다. 길은 좁긴 한데 난간이 높아 안전 위험이 적었고, 바로 옆에 바다가 보이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다. 내가 여기 산다면 매일 뛰고 싶을 듯. 시원한 바람과 햇살이 환상적이었다.
주탑을 지나면서 반대로 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긴 일방은 아니고 알아서 뛰면 된다.
직선이긴 하지만 아치형 길이 주는 멋이 있어 뛰기에 심심하지 않았다.
또한 이상한 빌런들을 막기 위해 경찰도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괜히 시드니가 안전한 도시에 손꼽히는 게 아니었다.
다리 끝까지 간 후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서 뛰고
첨탑을 만나고 옆에 시드니 항에 도착한 거대한 크루즈를 보고 맑은 하늘을 보다 보니 벌써 도착지다.
여기선 다들 기분이 좋은지, 앞에 저 친구가 하이파이브를 권하길래 나도 반갑게 하이파이브해줬다. 이런 게 재미지. (근데 막상 호주에서 달릴 때 하이파이브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에 좀 더 떠오른 해를 보며 마무리.
5km 마라톤 코스보단 브릿지 코스가 더 맘에 든다.
https://youtu.be/wC2g6DoA9Ps?si=7mRnCxgFpyh41f4T
이다음날이 마라톤 날이다. 마라톤에 대한 기대 보다 이제 호주 여행도 마무리이고, 호주에서 달리는 것도 마무리라는 게 더 아쉬웠던 아침.
언제 또다시 여길 올 수 있을까? 소중한 시간을 머리에, 가슴에, 그리고 다리에 더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