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가 끝나고 달리고 싶어졌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선 후 체중은 나이만큼 늘고 근육은 그 반대로 줄고 있었다. 원래 2년마다 하던 정기검진도 매년으로 바뀌고, 건강검진 때마다 비만과 성인병에 대해 주의/경고가 뜨기 시작했다. 이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아주 정중하게 알람을 주는 듯하다. 그 알람이 회사 보건팀에도 들어갔는지, 메일 하나를 받았다.
"건강 증진 활동 참가 요청"
"르미님은 건강검진 기준 '고위험자'입니다. 관리가 필요하오니 아래 건강 증진 활동 일정을 참고하시고 oo/oo일까지 접수를 완료해 주세요."
"내가 고 위험자라고? 아직 건강한데?"
물론 젊었을 때에 비해 살이 찐 건 맞다. 생각해 보니 15kg 정도 쪘는데, 그래도 몸이 어디 아프거나 한건 아니라 자연의 순리려니 생각하고 살았는데.. 고위험자라니..
내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지만, 보건팀의 해야 할 일은 임직원이 아프지 않는 것이니, 내가 곧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보다. 정중하게 말하고 있지만 거의 강제 입소 수준이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일주일 중 며칠은 이 핑계로 일찍 퇴근할 수 있을 듯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건강 증진 활동은 매트 필라테스였고, 10명의 사람들이 GX룸에 모여 강사와 함께 필라테스를 하는 것이었다. 필라테스하면 여자들이 이상한 기구 위에서 다리 찢고 이상한 포즈로 날아다니고 하는 게 상상돼서 좀 부담되긴 했는데, 다행히 여기에서 하는 필라테스는 맨손 필라테스 또는 매트 필라테스라고 불리는 맨손 혹은 소도구로 하는 필라테스였다.
호흡을 배우고 고관절을 요리조리 괴롭히고 배 안쪽의 근육을 괴롭히고 엉덩이와 뒷허벅지 근육(햄스트링)을 끊임없이 괴롭히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온몸이 뻐근했다. 유산소를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런데,,,
기분이 좋았다. 몸이 뭔가 개운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우나하고 온 느낌이라고 할까? 온몸이 골고루 뻐근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바로 씻으러 갈까 하다가 눈앞에 러닝머신이 보였다.
20대에는 그래도 헬스장에 자주 갔었지만, 당시에도 러닝머신은 거의 하지 않았다. 길어야 5~10분 정도 뛰고 덤벨이나 기구를 했었던 것 같다. 근데 오늘따라 러닝머신이 눈에 띄었다. 아마 요즘 러닝이 인기라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몸이 개운하니 갑자기 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올라가서 슬슬 속도를 올려봤다. 올라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같은 속도로 쭉 뛰어봐야지.
그렇게 속도를 8.5로 두고 가볍게 달렸다. 10분이 지났다. 땀이 또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이 가빠왔다. 멈출까, 그래, 처음이니까 이 정도만 할까? 하다가 호흡에 신경 써 보자 하며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뱉으며 달려보았다. 그러다 보니 또 10분이 지났다. 이젠 슬슬 종아리 근육과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다음에 또 하자 라고 하다가, 팔을 더 흔들어 보기로 했다. 팔을 앞뒤로 흔드니 조금 더 뛰기가 편해졌다. 그렇게 10분을 더 달리고 계기판을 보니 4킬로를 달렸다.
와.. 내가 4킬로를 달렸다니.. 그거 보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니.. 놀라웠다..
속도를 줄여 6.5로 놓고 앞뒤로 팔을 크게 흔들며 파워워킹으로 쿨다운을 했다. 땀은 계속 났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난 달리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바로 전날 아웃렛에서 예뻐 보이던 러닝화를 샀었고, 그날이 그 신발의 개시날이었다. 신기하게 모든 게 다 들어맞았다. 신발도 너무 편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왜 달리고 싶었었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몸에서 이젠 좀 운동해야 합니다라고 신호를 보낸 걸 수도 있는데, 다행히 그 텔레파시를 알아챘나 보다. 그렇게 40대 아저씨는 러닝을 시작하게 됐고, 또 하나의 즐거움이 시작됐다.
물론 젊었을 때처럼 아무 걱정 없이 달리기만 해도 된다면 좋겠지만, 나이 들고 달리려니 어려운 것도 많고, 아픈데도 많고,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과연 난 계속 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