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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엿보기_조선의 칠공주_칠옹주이야기(정혜옹주 1편)

태종의 딸 두 번째 이야기 

by 서진희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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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옹주 1편 ------------------               


조선의 옹주라는 명칭은 원래 고려 초기에 내. 외명부에 일정한 제도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현종 때 국왕의 첩에게 귀비(貴妃).숙비(淑妃)등의 호()를 주었고정종 때 이들을 원주(院主).원비(院妃)와 궁주(宮主)라 하던 것을 충선왕 때 궁주를 옹주로 개칭하고 정1품의 품계를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후궁(後宮소생의 딸과 국왕의 서녀에게 주는 작호이다.  정혜옹주는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의빈 권 씨 사이에 태어난 태종의 5번째 딸이자 서장녀이다정혜옹주(貞惠翁主)의 어머니는 태종이 후궁 제도를 법제화하여 맞아들인 첫 번째 후궁이었다.     

          

의빈 권 씨는 승은을 입어서 맞이한 후궁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명문가의 여식이고 미모도 특출 나고 건강해야 하며 지. 덕. 미를 갖춘 양반가의 여식이었다의빈 권 씨의 입궁이 정해지자 원경왕후 민 씨가 투기를 하며 울며 난리 소동이 나서 정식 후궁 책봉받는 가례날에 취소가 되었을 정도였다.    

      

태종은 의빈 권 씨를 위해 따로 거처도 지어주고 연못도 파주었다고 한다둘 사이에는 정혜옹주가 유일하다태종이 가장 총애했었다는 신빈 신 씨는 이성계의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의 몸종 출신으로 태종과의 사이에서 3명의 군()과 7명의 옹주(翁主)를 낳은 것과는 대비된다.    

      

태종 이방원의 무서운 면은 신빈 신 씨 소생의 정신옹주를 시집보낼 때 당시 사주팔자가 좋은 총각을 구하기로 하고 점쟁이를 시켜 한양의 도성 내를 가가호호 돌아다녔다. 정치적 풍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왕실과의  혼담에 대해 거부감이 심해지자 왕이 국혼을 치르기 위해 점쟁이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당시 종 3품 춘천 도호부사 이속(李續)의 집에도 점쟁이가 왔으나 왕명을 수행 중인 점쟁이에게 아들의 사주를 거짓으로 말해버린다.  이속(李續)의 아들 이근수(李根粹)가 낙점되어 혼담이 오가려 했으나 몸종의 딸에게 장가가게 된다면 내 아들은 죽었다그러나 상대가 명문가 출신의 의빈 권 씨의 딸인 정혜옹주라면 사돈을 맺을 수 있다고 ” 말해버린 것이다     


이 말이 태종 이방원의 귀에 들어가 이속을 곤장 100대를 내리고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고 전재산을 몰수하고 귀양까지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이속 일가를 관노로 격하시키고 이속의 아들 이근수(李根粹에겐 금혼령을 내려버린 사건이 태종실록 34권에 수록되어 있다.    

      

다시의빈 권 씨와 정혜옹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조선 공녀 출신이자 명나라 영락제의 총애하던 현인비 권 씨가 의빈 권 씨에게 은 백 냥을 하사했다이는 조선시대 때 같은 본관의 안동 권 씨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정혜옹주는 세종 1년(1491년) 의정부 참찬 바신(朴信)의 아들 박종우(朴從愚)에게 출가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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