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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꼭 그래야만 했냐?

EP.20 니들이 햄버거 맛을 알아?

by happy daddy

#1. 더치페이를 뼈저리게 경험하다.

친한 미군 동료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다.

신병기간이 지나 어느덧 일병 진급을 앞두고 행정실에서 제법 친해진 미군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날은 D-FAC(영내 식당)이 아닌,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자고 Jamens Gunn 그리고 Kevin과 나 셋이 와퍼를 시켰다. 정확히 뭐 때문에 그런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Gunn과 Kevine 은 무척 기분이 좋아 나한테 같이 가자고 자기들이 햄버거를 사주겠다고 해서 나도 얼마든지 동료들과 친해질 수 있다면, 게다가 돈 잘 버는(?) 미군들이 사준다고 하니 흔쾌히 따라 나갔다.


사무실에서 5~7분 정도 걸어가면 극장, 버거킹이 나오는데 아래 지도에 4번으로 표기된 지역에 버거킹이 위치해 있다. 대규모 AAFES는 GATE 근처에 있기 때문에 캠프 중간중간 이렇게 소규모 상점들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캠프 내 버거킹을 이용해(여기는 군대 안에 있는 시설이지만 개념이 달라 일반 매장과 같은 가격이었다.) 먹으면서 바깥에 있는 매장하고 큰 차이를 못 느꼈지만 2가지가 다른 점이 있었다.

하나는 감자튀김이 크기와 두께가 한국매장보다 2배 정도 되는 것 같고, 음료수가 무한 리필로 디퓨저에서 따라 마시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Antony's Pizza도 마찬가지다. Soda를 주문하면 얼마든지 다시 가서 리필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한국도 1회에 한하여 리필이 되는 것으로 바뀐 게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근데 여기서 내가 조금 문화충격을 받은 게 뭐였나 하면, 처음부터 여기는 미군들이 나의 점심을 사주겠다고 제안해서 부담 없이 간 거였는데 테이블에 앉자마자 둘이 내꺼가지 포함 3인 세트를 돈을 각출하는데 가령 15불이라고 하면 나 빼고 둘이 7.5불씩 내면 되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때 누가 잔돈이 없든지 누가 더 상급자이던지 하면 조금 더 내거나 혹은 적게 낼 수도 있는데 이것들이 내 눈앞에서 센트까지 하나하나 따지며 정확히 7.5불을 맞추는데 여간 내가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국 문화로 하면 먹자고 말한 사람이 다 내거나, 아님 선배나 연장자가 조금 더 부담을 하는 게 미덕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보고 배웠는데 동전까지 일일이 나열하며 내가 더 내서 작은 돈으로 내라, 아니다 그렇게 하면 모자라니 이렇게 하자 하며 한 3분여 동안 계속 돈을 맞추는 것이었다.


아는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은 현금을 계산할 때 한국처럼 암산으로 탁탁하고 후다닥 처리하는 문화가 아닌 일일이 지폐를 펴고 한 장씩 한 장씩 카운트하며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15불을 동전까지 해서 둘이 정확하게 분배하고 나서 결재를 하는데 내가 아예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물론 난 당시 일병계급이라 급여가 월 1만 원 조금 넘었다......) 사주려면 좀 티를 내지 말고 조용히(?)) 계산을 하던지... 순간 내 얼굴이 붉게 타 올랐다. 이유를 모르는 Gunn과 Kevin은 나한테 오히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아, 참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했다.


James Gunn 사진 중앙, 내가 교회에서 가르친 중학생들이 면회 와서 내 방에서 같이 찍은 사진

그들 문화에서는 이런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어렸을 때부터 루틴 하게 이어져 온 에티켓인데 이것을 가지고 이해 못 하는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위 사진에 나온 James Gunn은 내 베프이자, 서로 의지가 되었던 동료이자, 친구였다. 언제나 나의 편에서 이해하려 했고 한국을 존중하려 했고 또 미국인의 자유분방함도 동시에 지녔던 멋있는 친구였다.
이때도 갑자기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인 중학생들과 함께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어설픈 영어도 다 받아주고, 참으로 생각만 해도 고마운 녀석이다.


#2. 심벌을 좋아하는 미군들

우리 포대 상징 Night hawlks

내가 속한 1st 15th Field Artillery는 총 4개 포대이고 본부포대, A(알파), B(브라보), C(찰리) 그리고 SVC(서비스-지원) 포대이다. 이중 전투 부대는 A, B, C 포대이고 나머지는 본부와 지원포대인 것이다.


각 포대별로 상징하는 단어 혹은 동물을 주제로 부대깃발에도 들어가고 또 이걸 가지고 부대 티셔츠도 제작하여 만들어 입는다. 우리 포대는 지원포대이고 '나이트 호크'이다. 유일하게 하늘을 나는 새를 상징으로 했는데 아마도 모든 지원을 신속하게 날아서 용맹스럽게(?)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일병이 되고 난 후, 부대에서 P.T 할 때나 대대 체육대회 행사 같은 큰 행사를 할 때 단체티를 제작하는데 가장 손쉬운 것이 상징하는 심벌을 가지고 제작을 하는 것이다. 나름 처음 맞추는 단체티이고, 또 미군부대라 하여 조금 뭐 다른 특별한 기대를 했지만 내 생각에 좀 밋밋해 보였다.


타 포대는 악어, 불도그, 코브라 등 맹렬한 짐승의 날 것 그대로 이미지화하고 칼라도 블랙계열로 나름 위압감도 주고 소위 허세가 날리는 반면 우리 포대는 그냥 매 한 마리 그려 놓고 Service Battery 1st 15th Field Artillery Nighthawks 이 문구가 끝이었다. 칼라는 그레이로 가장 무난하지만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이 단체티도 엄연히 전부 사비로 제작해서 구입해야 하는데 카투사들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급여가 많지 않으니 당시 미군들은 7불인가? 냈고 우리들은 5불 정도 낸 것 같다. (당시 IMF 전이라 1불당 약 800원 수준이다.) 달러로 줘야 해서 각자 동두천 시내 가서 환전을 한 다음 모아서 줬다. 5불이라 해도 내 급여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기에 비싼 편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체티를 입고 사단 체육대회나 여단 체육대회 행사 시 유용하게 입었다.

아시디시 피 이렇게 특별한 행사를 목적으로 만든 옷은 그 행사가 지나면 거의 안 입게 되고 그냥 옷장에 장식해 놓을때가 많다. 그래도 반팔로 제작되어 있어서 배럭스 안에서는 얼마든지 입었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의외로 질리지 않은 칼라가 또 그레이였다.


사촌동생들과 함께 집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때도 부대티(Service battery........)를 입고 있었다.

아래는 PT 바지를 입고서 이게 의외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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