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낯설지 않은 완톡문화
브리즈번에서 약 3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솔로몬 군도의 수도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운 다습한 마치 사우나 한증막에 들어선 것처럼 뜨겁고 끈적한 열기가 확 다가온다. 아스팔트 활주로에 지열된 열기가 그대로 푹푹 찌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알았던 솔로몬 군도의 첫인상은 후덥지근 그 자체였다.
입국 심사를 할 때 다행히 E 회사 사람인 것을 알리니 순적하게 심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호주에서처럼 까다롭지 않아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짐을 가지고 나와보니 회사에서 상사 1명과 현지인 기사 1명이 나와 주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곧장 사무실에 가게 됐는데 위치한 부지가 바닷가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고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가서 곧 법인장님과 마중 나와주신 과장님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드렸고 솔로몬 군도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해 주셨다.
간단하게 업무를 기술하면, 솔로몬 군도에서 원목을 생산하여(벌목 및 조림) 선적을 하여 해외에 수출을 하고, 그에 따른 사무실 운영, 캠프운영, 인력관리, 재정관리, 장비관리 등으로 나눠진다.
사무실에서는 각 캠프의 현장 보고와 요청 사항 행정 업무를 감당하고 나는 적응기를 거치고 섬에 있는 현장 캠프로 가게 될 것이라 하였다.
법인장님, 과장님은 오랫동안 근무하시며 한국에 가실 기회가 맍지않아서(현장 책임자) 회사에 궁금한 점, 한국에서 어떤 이슈가 있는지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는데, 딱히 나라고 이제 막 4개월 본사에서 있다가 와서 아는 게 그분들 기준으로 많이 알지 못했다. 또 그게 당연한 것이고... ... 그래도 비교적 본사에 있을 때 여러 부서 사람들과 잦은 왕래도 있었고 대충 들은 게 있어서 아는 수준에서 말씀드리면 들으시고는 아, 그래? 그렇게 됐구나 하시며 반가워하셨다. 대부분 자기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고 그것을 캠프에 가서 어떤 마음으로 물어보셨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당분간 사무실에서 또 적응기(?)를 마친 후 C 섬으로 이동을 하게 될 것이다 하셨다. 회사는 인터넷이 되긴 하지만 한국을 떠오르면 안 된다. 전화 모뎀으로 하여 속도도 굉장히 느리고, 파일 하나 전송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 정말 업무 외에 개인용무를 보는 건 거의 불가한 수준인 것 같다. 사무실이 있는 호니아라부터 가장 북쪽 끝 C섬의 거리가 대략 450km가 넘는다. [구글지도로 측정 시] 그 거리에서 연락을 취하는 수단이 2가지인데 하나는 섬의 주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전화를 거는 방법과 하나는 캠프에 설치된 무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무전기로 소통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잡음도 심하고 안테나의 영향을 받아 어려울 때도 많다. 하루 2회 정도 아침, 저녁에 캠프 현장의 날씨, 장비, 작업 등을 보고 받고 특이사항 있으면 전달하고, 보고 받는다. 그래서 무전기가 주요 통신 수단이었고 이게 고장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솔로몬 군도는 당시 인구 50만 명의 독립된 나라이다.
1978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입헌 군주국이 되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는 남태평양에서 미군과 일본군의 최대 격전지중의 하나이기도 했고 '과달카날 전투'가 아주 치열했다.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기도 한데 전쟁과 군사에 관심이 많으신 독자들은 한번 검색해서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언어는 피진어를 쓰는데 쉽게 말해 '브로큰 잉글리시'라 보면 된다.
여기는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오는데 아무튼 현지어와 영어를 섞어 쓰면서 그들만의 알기 쉬운 언어로 만들어져 간 것이다. 근데 이 피진어가 공식적으로 책으로 나온 것도 없고 그냥 현지에서 몸으로 체득해서 배워야 한다. 더군다나 문법이 없기 때문에 어느 말이 틀렸는지 알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어 그야말로 뜻이 통한다 그럼 그게 말이 되는 것이다. 영어가 베이스이긴 한데 실제로 다른 것도 많다.
예를 들면 '밥 먹었냐?', '밥 먹을 거냐?', '밥 먹었다'이 3가지 표현을 '까까이' 다 표현할 수 있다.
분위기, 정황, 뉘앙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그냥 현장에서 체험하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동사 뒤에 -em 을 붙이거나, 혹은 변형해서 쓰이기도 한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나는 네가 좋다'는
Mi likem U 이렇게 표현하고 영어로는 I like you 가 된다.
이게 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피진을 쓰면 현지인들과 더 친해지고 교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필수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 피진도 하와이, 솔로몬 군도, 팔라우, 파퓨아뉴기니 등 전부 조금씩 다르다. 각 나라 각 민족들마다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완톡이란 같은 말을 쓴다는 개념이다. Onetalk을 피진 스타일로 Wantok으로 표현한다.
깊게 들어가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같은 지역에서 같은 말을 같은 가족까리 쓴다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방 사람들이 같은 사투리를 사용하면 친근감이 있고 동향에서 느껴지는 친근함과 친척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끼리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맞을 것이다. 솔로몬 군도도 비록 인구가 50만 명이지만 이런 문화가 강하게 있어서 지켜지고 있다. 만약 내가 다른 섬에서 왔는데 이곳에 나와 같은 완톡이 있다면(예를 들어 실제 친척이 될 수도 있고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찾아서 내가 멀리서 왔으니 나를 위해 먹을 것과 잘 곳과 기타 등등을 아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것을 요청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으로 편의를 제공해 준다.
만약 자기 자식이 공부하러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도 제일 먼저 거기에 자신의 완톡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누가 제일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해서 그 사람에게 찾아가라 한다. 그리고 그 완톡은 자신과 어떤 관계이든지 연결되어 있으면 최선을 다해 편의를 제공해 준다. 어떻게 보면 참 아름다운 행동이고 지켜져야 할 전통과 유산이기도 한다. 반대로 이 완톡 문화로 아무것도 일하지 않고 그저 주구장창 완톡만 외치고 도움을 바라는 현지인들도 있고 그게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공적인 일이나, 사회적 법규를 따라 원칙과 기준에 의해할 일에도 이 완톡이 적용돼 자기 사람 위주로 정책이 바뀐다 든 지, 완톡 위주로 특혜가 제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나라도 집안에서 장남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들을 부양하고 가르치고 공부시키고 모든 것을 희생해서 집안을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게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일부 나온 것 같고 완톡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어렵지만 '같은 혈연, 같은 지역'의 교집합을 통해서 도와주고 뭉치고 이끌어 주는 것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아마 완톡문화가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점점 사회가 발달해지고 각자 교류도 적어지면서 누가 나의 사촌인지도 모르는 현실이기에 점점 줄어들 것이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사무실 분위기 익히며 현지 직원들과 인사 후 정신없이 하루를 마친 후 저녁에 숙소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았다. 여기도 바로 앞에 남태평양 바다가 있었고 (숙소는 사무실보다 바다가 더 가까웠다.) 목조 주택으로 2층 구조로 1층은 과장님 가족이 2층은 직원들 숙소로 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는 시원한 맞바람이 부는데 잠깐 남태평양의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P.03 오 ~ 해피 아일랜드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