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없는 리더십이 만들어낸 보고지옥, 그건 단순한 업무지시가 아니었다.
사건의 발단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경력직 사원이 새롭게 합류해,
온보딩 교육을 받던 그 순간?
아니면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낯선 리더를 직속 상사로 맞이한 바로 그날?
조직생활이란,
때때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변수들과 마주하게 된다.
나의 인사이동 역시,
그런 ‘예고 없는 변화’ 중 하나였다.
내가 속한 파트는 성격이 조금 특이했다.
구성원들의 업무가 상이하게 달랐다.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서,
누군가의 업무를 대체해 주거나 도와줄 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팀에서 인력이 부족하면
자연스레 우리 파트에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 흔쾌히 나서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며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자
작은 불편함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결국,
그런 요청이 반복되던 바로 그 부서로
우리는 인사이동을 가게 되었다.
부서이동이 있은 후 한동안은 나쁘지 않았다.
업무요청이 있어도, 이제는 '한 팀이니까.'라는
명목 아래에 예전보다 견딜만했다.
하지만 팀장님이 쌓아온 경력의 결과
파트원 각자가 수행하던 업무의 결이 크게 달라,
현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 간극은 상사의 지시를 향한 작은 의구심으로 시작해
끝내 불신으로 번졌다.
어찌 보면 맞지 않는 팀 배치의 문제이자,
성격이 다른 직무들을 한 파트에 묶어 둔 구조적 문제였다.
결국 이 간극은 현장에서 구체적인 불편으로 드러났다.
역할 밖 과제가 배정되고,
실행 기반 없이 결과만 요구되는 일이 이어졌다.
보고를 해도 관심과 책임이 연결되지 않는 구조였고,
대신 디테일 위주의 지적만 쌓였다.
이러한 불편은 불만으로 이어졌지만,
팀원의 다수가 외근으로 사무실을 비워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도 늘 팀장님을
모시고 식사하러 가야 했다.
직장인의 낙이라 불리는 그 시간마저도
숨 막히게 답답하고,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늘 목이 메는 밥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다.
그렇게 관계의 결이 위계 속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 흘러가던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졌다.
부서 전체 회식이 잡힌 날이었다.
퇴근 후 우리 파트 사람들끼리
먼저 회식 장소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회식이 시작되기 전 우연히 사내 메일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 파트에게만 앞으로 일일보고를 제출하라는 지시였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는 외근직도 안 쓰는 일일보고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우리만 쓰라고?’
파트장님을 포함해 모두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불쾌함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다들 불편한 마음으로 회식 자리를 마무리했고,
다음 날부터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일보고를 써야 했다.
보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목적이 흐린 채 강제됐다는 점이었다.
매번 루틴 하게 반복되는 일들까지
모조리 항목으로 채워 넣다 보니,
오히려 ‘오늘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기록되는 기분이 들었다.
초조함과 자괴감이 나란히 밀려왔다.
수행 능력 보완을 위해서든,
업무상 정말 필요한 보고였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도,
자괴감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보고에는 명분도, 피드백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시의 배경에
감정적 맥락이 섞여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보고는 소통이 아니라 권위를 확인받는
위계의 절차처럼
그저 우리를 숨 막히게 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하루도 빠짐없이 따라다녔다.
반년 넘는 시간을 그렇게 버텼다.
그러다 회사 방침에 따라
운영 방식이 정비되면서,
우리는 그 지옥 같던 일일보고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부재한 리더십 아래, 직무에 대한 이해 없이
휘둘러진 권한은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2019년 7월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근로기준법은 ① 지위·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②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③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본다.
또한 사용자는 지체 없는 사실조사
·피해자 보호·행위자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사안별 판단이 필요하지만,
위계로 강요된 불필요한 절차는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겉으로는 상사의 ‘꼰대 마인드’로
치부하기 쉬운 그 일일 보고도,
법의 기준으로 보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여지가 있었다.
지금은 법이 시행되고 꽤 시간이 지났으니,
알게 모르게 이렇게 암암리에 진행되던 괴롭힘 들도
조금은 줄어들었기를 바라본다.
혹, 지금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지금의 무게를 혼자 탓하지 마세요. 잘못은 당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더의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꼰대스러움’으로
관계가 기울게 하지는 않았는지,
권위를 앞세운 말과 절차가
불필요한 무거움으로 자리 잡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차분히 돌아봐 주시길 바란다.